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기업) 대만 TSMC가 반도체 불황 속에도 올 들어 두 달 연속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전 세계적인 ‘챗GPT’(대화형 AI) 열풍에 힘입어 AI 두뇌 역할을 하는 핵심 반도체 GPU(그래픽처리장치) 수요가 늘자, 이 물량 대부분을 위탁 생산하는 TSMC가 반사이익을 톡톡히 누리고 있는 것이다. TSMC는 2월 매출이 작년보다 11.1% 증가한 1631억7400만대만달러(약 7조원)를 기록했다고 최근 발표했다. 이에 앞서 1월에도 작년보다 16.2% 상승한 2000억5100만대만달러(약 8조5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반면 메모리 반도체가 주력인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반도체 사업 적자 폭이 3조원대까지 급격히 커질 것이란 어두운 전망이 나오고 있다. 챗GPT가 몰고온 ‘나비효과’로 TSMC가 성장을 질주하면서 삼성전자와의 파운드리 점유율 격차도 더욱 벌어질 전망이다.
◇엔비디아·TSMC 떠받치는 ‘챗GPT’ 열풍
당초 TSMC도 올초까지 1분기(1~3월) 실적이 4년 만에 처음으로 전년 대비 꺾일 수 있다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작년 11월 챗GPT 출시 이후 이를 접목하려는 주요 테크 기업들의 GPU 수요가 폭증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AI 반도체 GPU 시장 1위 기업 엔비디아의 일감이 TSMC로 몰려든 것이다. 대만 공상시보는 “챗GPT 열풍에 엔비디아와 AMD 등 주요 GPU 업체의 긴급 주문이 쏟아지면서 TSMC가 예상 밖의 호실적을 냈다”고 분석했다. 엔비디아의 주가 역시 올 초 대비 60%(143달러→229달러)나 폭등했다.
순서대로 연산을 처리하는 CPU(중앙처리장치)와 달리 여러 계산을 동시에 처리하는 GPU는 현재 초거대 AI의 연산에 가장 적합한 반도체로 꼽힌다. 원래 연산량이 많은 3D(3차원) 컴퓨터 게임을 원활하게 작동시키려고 만든 부품이 AI산업의 최고 핵심 부품으로 부상한 것이다.
TSMC와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점유율 격차도 더 벌어지고 있다. 14일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작년 4분기 파운드리 시장에서 1위 TSMC는 점유율 58.5%, 2위 삼성전자는 15.8%를 기록했다. 점유율 격차는 42.7%포인트로 전분기(40.6%포인트)보다 더 커졌다. 트렌드포스는 “파운드리 경쟁사들이 부실한 성과를 내면서 TSMC가 상대적으로 시장 점유율을 확보할 수 있었다”면서 “삼성은 퀄컴과 엔비디아가 플래그십 제품용 7나노 이하 반도체 주문을 옮기면서 수요를 상당 부분 잃었다”고 분석했다. 엔비디아는 TSMC와 삼성전자 파운드리를 모두 이용하지만, 수율(생산품 대비 정상품 비율)과 생산 능력이 더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TSMC에 주문량을 더 늘렸다는 뜻이다.
◇갈수록 커지는 삼성전자 적자 전망 폭
반면 삼성전자는 예상보다 더 깊은 적자의 늪을 지나고 있다. 14일엔 당초 1조원대로 예상됐던 삼성전자의 1분기 영업이익이 1조원에 못 미칠 것이란 증권사 보고서까지 나왔다. 유진투자증권은 이날 “삼성전자의 1분기 실적이 예상보다 훨씬 부진할 것”이라며, 매출은 전년 대비 16% 감소한 65조5000억원, 영업이익은 94% 낮은 8000억원으로 전망했다. 반도체 사업 적자 폭이 당초 예상한 1조2000억원에서 2조3000억원으로, 그리고 다시 3조7000억원으로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증권사는 올 1월만 해도 삼성전자 1분기 영업이익을 2조8000억원으로 전망했는데, 한 달 단위로 거의 1조원씩 전망치를 하향하고 있다.
보고서를 쓴 유진투자증권 이승우 애널리스트는 “작년 말 기준 반도체 재고가 29조원이 넘을 정도로 과도해 당분간 계속 실적에 부담이 될 전망”이라며 “반도체 실적 회복을 위해선 공포스러운 깊은 적자의 골짜기를 건너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2분기 실적은 스마트폰 사업 부진과 맞물려 1분기보다 더 안 좋을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