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화가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1834~1903년)는 주로 영국에서 활동했지만, 미국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그는 파리 살롱전에 출품했으나 낙선해 낙선 화가 전람회에 그 작품을 내놓기도 했다. 이후 파리를 떠나 런던에서 지냈다. 거기서 자기 어머니를 그린 ‘화가의 모상(母像)’이라는 작품을 그렸다. 당시 초상화 화풍은 세부 묘사에 집중하는 방식이었는데, 휘슬러는 전체 분위기를 중요시했다.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

1934년 미국 정부는 어머니의날을 맞아 이 그림을 넣어 기념 우표를 발행했다. 소박한 검정 드레스를 입고 성경에 손을 얹고 반듯하게 앉은 모습이 청교도적 경건한 미국 어머니의 표상이라고 본 것이다.

하지만 실제 모자 관계는 평탄치 않았다. 목사가 되라는 어머니의 성화를 피해 휘슬러는 도피성 그림 유학을 떠났다. 유럽서 자유를 꿈꾸는 다 큰 아들을 잡으러 어머니는 불쑥 런던으로 날아가 미국으로 데려가려 했다고 한다. 이에 불만이 쌓인 휘슬러는 어머니의 초상을 검정과 회색 위주로 어둡게 채웠다. 표정도 묵직하고 냉정하다.

휘슬러는 어머니의 얼굴을 정면이 아닌 옆모습으로 그렸다. 왜 하필 옆얼굴일까. 옆모습은 가장 중립적인 시각이라는 평이다. 사람의 정체성과 내력을 뜻하는 말 ‘프로필(profile)’은 영어로 옆모습을 표현할 때 쓴다. 옆모습이 실체라는 은유적 의미다.

나해란(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마음공감연구소 나해란 소장은 “얼굴 앞모습은 작위적으로 지어낼 수 있어도 옆모습은 어렵고, 옆모습을 잘 만들어 보려는 사람도 없다”며 “옆모습은 한 인간의 오롯한 본질이며, 꾸며내지 않은 실체라는 휘슬러의 생각이 그림에 반영된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나 소장은 “옆모습은 이성으로 가릴 수 없는 무방비로 노출된 상태”라며 “그래서 많은 이의 옆모습에 쓸쓸함이 배어 있다”고 말했다. 화가 휘슬러도 그것을 포착해 그림에 담았다는 해석이다.

‘화가의 어머니’는 영국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 출품되어 호평을 듬뿍 받았다. 훗날 휘슬러의 가장 유명한 그림이 됐으니, 세상 모를 일이다. 어찌 됐건 어머니 옆모습 덕에 아들은 잘 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