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설난영 비하’ 논란 이후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의 결혼 사연을 접하게 됐다. 지난 31일 강원도 속초에서 열린 김문수 후보의 합동 유세 연설을 통해서다. 그는 “예식장도 빌리지 못해 조그마한 교회 교육관에서 결혼”했는데, “밥 먹을 돈도 없어서 노조 같이 하는 사람들 국수 한 그릇도 못 줬다”고 했다. 신부는 웨딩드레스 대신 연분홍색 원피스를 입고 식을 올렸다. 하객석을 채운 건 이들을 감시하기 위해 출동한 경찰들이었다. 이런 걸 보면 “부부 관계는 돈·학벌·지위로 하는 게 아니다”라는 그의 말이 빈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혼정보업체 상담은 유튜브에서 잘 팔리는 콘텐츠 중 하나다. 내용은 뻔하다. 대부분 “여자는 무조건 어려야 한다”든지 “남자는 연봉이 최소 얼마여야 한다”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사람들은 자신보다 못한 스펙을 가진 출연자의 결혼 도전기에 응원을 보내면서 내심 위안을 찾거나, 맞선 상대에게 터무니없이 높은 조건을 요구하는 출연자를 돌팔매질한다. 남자든 여자든 조건에 집착하는 사람은 공분을 사기에 딱 좋다. 인터넷 게시판에는 관련 영상이 끊임없이 소환된다. 가뜩이나 삶도 팍팍한데 이보다 화풀이하기 좋은 상대는 없다.

포털 사이트에 ‘결혼정보업체’를 검색하면 ‘등급표’라는 연관 검색어가 따라붙는다. 배우자를 찾는 개인은 외모·직업·연봉 등에 따라 한우처럼 등급이 매겨진다. 우리 사회는 알게 모르게 이런 기준들을 수용하고 있다. 고졸 노동자 여성은 대통령 부인감이 아니라는 혐오 발언이 공공연히 전파를 타는 시대다. 자기 배우자, 혹은 자녀의 배우자를 향한 평가의 잣대는 얼마나 까다로울 것인가. 여기서 진심이나 사랑을 찾으면 세상 물정 모르는 바보 취급 받기 쉽다.

결혼 시장은 젊은 남녀에게 ‘육각형 인간’이 되길 요구한다. ‘육각형 인간’이란 여러 방면에서 일정 수준 이상을 갖춘 사람을 의미한다. 결혼에는 외모, 키, 학력, 재산, 연봉, 부모 노후 준비 여부 등의 기준이 있다. 당장 직장인 커뮤니티 사이트만 보더라도 배우자 조건의 하한선을 나열한 글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한두 가지 조건을 충족할 순 있겠다. 그런데 그 교집합에 들어가기란 대단히 어렵다. 기준이 워낙 높아지니 범인(凡人)들은 지레 겁먹고 결혼을 포기한다.

지난 28일 통계청이 발표한 ‘3월 및 1분기 인구 동향’에 따르면 결혼과 출산은 다소 증가한 걸로 나타났다. 1분기 혼인 건수는 5만8704건으로 작년 동기 대비 8.4% 늘었다. 출생아 수 역시 6만5022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451명(7.4%) 많았다. 기쁜 일인 건 분명한데, 샴페인을 터뜨리기엔 아직 이르다. 한동안 내리막길만 걷다가 이제 겨우 반등한 정도다. 게다가 현재 결혼·혼인 적령기에 있는 30대들은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들이다. 한 해에 70만명 안팎이 태어났다. 사람 수가 많으니, 결혼과 출산 건수가 느는 건 당연한 일이다. 반면 20대 초반 이하는 나이마다 50만명을 넘지 않는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결혼·출산할 때가 ‘진짜’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혼인 중 출산이 약 95%를 차지한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일단 결혼부터 하게 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각 당의 대선 공약처럼 스드메(스튜디오·웨딩드레스·메이크업) 견적을 투명화하거나 신혼부부 월세를 지원하면 혼인 건수를 유의미하게 늘릴 수 있을까? 사실 비용은 결혼을 꺼리는 여러 이유 중 하나일 뿐이다. ‘결혼은 현실’이라며 학력·직업으로 사람 등급을 매기는 문화, ‘육각형 인간’이 아니면 박탈감 느끼게 하는 사회 분위기를 바꾸지 않는다면, 나랏돈으로 호텔 결혼식을 지원한다고 한들 결혼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하진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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