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팔아서 채권자들과의 채무 조정을 위해 최대한 많은 돈을 따로 모아 놓았다. 그러고 난 다음 해외로 나가 허버트와 합류했다. 나는 한 달 안에 영국을 떠났으며, 두 달 안에 클래리커 상사의 사무직원이 되었고, 넉 달 안에 처음으로 다른 사람과 분담하지 않은 단독 업무를 맡았다. 여러 해가 흐른 뒤 마침내 나는 클래리커 상사의 동업자가 되었다. 나는 하버트 부부와 함께 행복하고 검소하게 살았다. 빚을 다 갚았고 비디와 조와는 끊임없이 편지를 주고받았다. - 찰스 디킨스 ‘위대한 유산’ 중에서

일찍 부모를 잃고 가난한 매형 조 밑에서 자란 핍은 어느 날, 미지의 후원자에게서 막대한 유산을 약속받고 신분 상승의 꿈에 부푼다. 아무런 노력 없이 얻은 횡재가 비루한 과거의 때를 벗겨내고 상류층 신사로 거듭날 기회를 만들어 줄 것 같았다.

핍은 자신을 진정으로 아껴주던 조와 친구 비디를 외면하고 고향을 떠난다. 도시에서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에 빠져든 그는 이내 감당할 수 없는 빚더미에 오른다. 한때 후원자가 빚을 갚아주기도 했지만, 유산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핍의 환상은 산산조각 난다. 후원자는 고결한 신사가 아니었고, 그가 받게 되어 있던 유산도 죄수의 피 묻은 돈이었다. 그 모든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핍은 많은 것을 잃는다. 그에게 남은 것은 흥청망청 쓰고 남은 빚과 자괴감뿐이었다.

핍은 자신이 가진 것들을 팔아 빚 일부를 갚는다. 그 후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성실히 일한 그는 마침내 채무를 모두 상환한다. 그제야 핍은 사랑하는 사람들 곁으로 돌아간다. 금전적으로 여유가 생겼고 다시는 방탕한 생활에 빠지지 않았다. 그가 물려받아야 할 유산은 물질적 부유함이 아니라 정신적인 성숙과 책임감이었다.

사람은 쓰라린 실패와 좌절을 통해 삶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진정한 의미의 자유와 성장은 오직 자신의 삶을 온전히 책임질 때만 가능하다. 때로 타인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예기치 않은 행운을 얻기도 하지만 자기 스스로 선택하고 감당해야 할 몫이 있을 뿐, 인생 어디에도 공짜는 없다. 누가 이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있는가? 만약 공짜로 무언가를 주겠다거나 조건 없이 빚을 탕감해 주겠다는 이가 있다면 그 대가로 무엇을 내놓으라 할 것인가, 두려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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