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편집자는 해외의 책을 국내에 소개하는 일도 한다. 책을 우리말로 옮기는 것은 번역자의 일이지만 제대로 번역되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편집자의 몫이다. 편집 과정에서 수많은 오역을 마주하다 보니 다소 문장이 아름답지 못하더라도 정확한 번역을 선호하게 되었다. 그래서 ‘번역은 제2의 창작’이라는 말은 잘못이며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해왔다. 이 문장을 마주하기 전까지는.
몇 해 전 도쿄를 방문한 적이 있다. 어느 공원을 지나는데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마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일본도 비둘기가 골치인가, 하고 지나가려는데 아래에 적힌 한국어 번역이 눈길을 끌었다. ‘비둘기가 알아서 한다’. 비둘기가 알아서 한다고?! ‘먹이’라는 명사도 ‘주다’라는 동사도, 무언가를 금지하는 부정사도 없는 번역을 보며 한참을 웃고 말았다. 그런데 도쿄를 생각하면 아직도 그 현수막이 떠오른다. ‘도쿄에선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면 안 되지.’ 완벽한 오역이 원래 메시지를 이토록 오래 전하고 있다니. 그 현수막은 어쩌면 굉장히 잘된 번역이 아닐까.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오역이 있다. 그 가운데는 이제 너무 유명해져서 바로잡기 어려운 것들도 있다. 가령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의 대사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는 ‘이대로냐 아니냐’쯤으로 번역되는 게 옳다. 노벨상 수상자 가즈오 이시구로의 책 제목 ‘남아 있는 나날’은 ‘낮의 잔상’ 정도가 맞겠다. 인기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은 번역된 문장 자체로도 무척 어색한데, ‘거인의 진격’ 혹은 ‘진격하는 거인’이 맞는다.
이러한 잘못을 보며 혀를 끌끌 차기만 했는데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거인의 진격’이었다면 지금처럼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거나 인기가 있었을까? 하고 말이다. 세상에는 정말 쓸모없는, 그저 잘못일 뿐인 오류도 분명히 많다. 하지만 어떤 오역은 잘된 번역보다 더 큰 효과를 발휘하기도 한다. 옳고 그름의 기준만 적용하다 보면 놓치는 것들이 있음을, ‘혼자서도 알아서 잘하는’ 도쿄의 비둘기에게서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