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공무원 피살 진상 은폐’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부장 이희동)가 16일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과 서욱 전 국방부 장관,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자택과 사무실 등 10여 곳을 압수 수색했다. 국가안보실과 국정원, 국방부 예하부대, 해경 등 사건 관계자의 사무실과 자택 등도 이날 압수 수색 대상에 포함됐다.
박 전 원장은 2020년 9월 서해에서 북한군의 총격으로 사망한 해수부 공무원 이대준씨가 북한군에게 ‘대한민국 공무원이다. 구조해달라’는 취지로 말한 감청 내용을 첩보 보고서에서 무단 삭제하도록 지시한 혐의(직권남용)로 지난달 6일 국정원에 의해 고발당했다. 국정원 직원이 첩보 등을 토대로 이씨가 자진 월북한 것이 아니라 표류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내용의 내부 보고서를 작성했는데, 박 전 원장이 이를 삭제하라고 지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 전 원장은 이날 휴대전화와 수첩 5권 등을 압수당했다고 한다. 박 전 원장은 “국정원 서버가 아닌 왜 저희 집을 압수 수색하느냐”며 “겁주고 망신 주려는 것”이라고 했다. 검찰은 당시 청와대와 정부 관계자들이 사건 무마를 위해 ‘월북 몰이’를 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 중이다.
서욱 전 장관은 이씨 피살 당시 청와대 관계장관회의 직후 군 정보망인 군사통합정보처리체계(MIMS)에서 군사기밀 47건이 무단 삭제된 의혹과 관련해 이씨 유족으로부터 지난달 9일 고발당했다. 국정원 등은 이씨 사망 다음 날인 2020년 9월 23일 오전 1시와 10시 두 차례 열린 관계장관회의 전후 MIMS 등에서 기밀 정보가 삭제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당시 회의에는 서 전 장관을 비롯해 노영민 전 비서실장, 서훈 당시 국가안보실장, 박지원 전 국정원장, 이인영 전 통일부 장관 등이 참석했다.
서훈 전 실장은 국방부가 사건 당시 ‘북이 총격을 가하고 시신을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다’고 발표했다가 사흘 만에 ‘시신 소각이 추정된다’고 입장을 바꾼 과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서 전 실장은 2019년 11월 귀순 어민 2명이 강제 북송되기에 앞서 이들에 대한 합동 조사를 조기에 강제 종료하라고 지시한 의혹으로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3부(부장 이준범)의 수사도 받고 있다.
검찰이 지난달 13일 국정원 압수 수색에 이어 한 달 만인 이날 박 전 원장 자택 등을 압수 수색하자, 법조계에서는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 라인 핵심 인사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하고 있다”는 말이 나왔다. 검찰은 압수물 분석을 마치는 대로 박 전 원장 등을 소환 조사할 전망이다. 향후 수사는 서해 공무원 피살 진상 은폐 의혹의 ‘윗선’을 규명하는 데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검사 출신인 한 변호사는 “박 전 원장 등 주요 피고발인에 대한 압수 수색 영장을 법원이 발부한 것은 범죄 혐의에 대한 소명이 상당 부분 이뤄졌다는 뜻”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