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생명

류이치 사카모토·후쿠오카 신이치 지음|황국영 옮김|은행나무출판사|212쪽|1만8000원

‘전장의 크리스마스’ 등 세계적인 영화 명곡을 남겨온 사카모토 류이치. 유전자 연구의 대가이자 독특한 생명철학으로 이름을 알려온 생물학자 후쿠오카 신이치. 일본 내 ‘음악’과 ‘생명’ 분야를 대표하는 두 사람이 2017년 NHK 방송, 2020년 편지 등으로 나눈 대담을 책으로 엮었다. 얼핏 봐선 감성과 이성의 대조군 같은 관계지만, 20년 지기인 이들은 서로의 영역에 명확한 공통점이 있다고 주장한다. 음악과 생명학 모두 ‘자연을 파괴함’으로써 탄생했다는 것. 자연의 소리가 악보의 형태로 예속된 것이 음악이 됐고, 세포를 찢고 뭉개며 생물학이 발전했다는 것이다.

지난 20년간 두 사람이 함께 숙고해온 주제도 ‘자연을 온전히 표현하는 법’이었다. 사카모토가 음을 일부러 조율하지 않은 피아노 현에 금속 재질을 문대가며 녹음한 앨범 ‘async’(2017)는 잡음을 통해서라도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의 소리를 담아내기 위한 시도였다. 후쿠오카는 자연의 섭리에 따르면 ‘죽음’은 슬퍼하기보단 “축하할 일”이라고 관조한다. 그에게 죽음의 순간은 혼자서 세상에서 사라지는 ‘탈락’의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노화에 끊임없이 저항하던 행위를 멈추고, 자신이 가진 자원과 시간 등의 생태적 자원을 다른 젊은 생물에게 넘겨주는 ‘증여’의 개념이다. 이 대담 전후로 사카모토가 암 투병을 반복했고, 2023년 3월 세상을 떠났음을 겹쳐 본다면 더욱 의미있게 다가오는 해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