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은 5일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북한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가 가장 위험하다”며 대북 정책에 대해 조언했다. 사진은 천 이사장의 2019년 모습. /김지호 기자

“‘북한이 비핵화 의지가 있다’는 판단은 하나의 희망적 사고에 불과한 것입니다. 북한을 선의(善意)의 관점으로 대하던 태도가 지난 5년간 대북 정책을 엉뚱한 방향으로 끌고 가지 않았습니까.”

천영우(70)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은 5일 본지 인터뷰에서 현 정부의 대북 정책을 평가하며 이같이 말했다. 1997년 외교부에 들어가 외교정책실장,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등을 역임한 그는 2006년부터 2년여간 북핵 6자회담의 우리 측 수석대표로 참여한 외교 전문가다. 이명박 정부 청와대 외교안보 수석을 지낸 천 이사장은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최일선의 현장에서 겪었던 경험과 제언을 책에 담았다. 오는 8일 ‘대통령의 외교안보 어젠다-한반도 운명을 바꿀 5대 과제’ 출간을 앞둔 그는 “북한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가 가장 위험하다”고 했다.

그는 2006년 2월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로 임명된 당일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찬 자리에서 만난 순간을 회상했다. 천 이사장은 “그때까지도 노 대통령은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의 실체가 없고 미국의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를 위해 고의로 정보를 조작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며 “핵심 참모들이 대통령에게 음모론을 입력해온 결과였다”고 했다. 천 이사장은 “내가 나설 자리는 아니었지만 1998년 이후 북한이 농축 프로그램을 추진해온 행적을 자세히 설명했고, 북한 사기극에 당할 위험성을 지적했다”고 했다.

천 이사장은 북한 핵 문제를 두고 “언덕에서 굴러 내려온 바위를 다시 언덕 위로 밀어 올려도 다시 굴러내리길 반복하는 ‘시시포스의 신화’와 같다”고 비유했다. 몇 차례 진행된 미·북 정상회담과 각종 대북 제재 등에도 북한의 핵 개발 의지를 막을 수 없었다는 진단이다.

천 이사장은 “북한 비핵화의 필수 조건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시 ‘경제 발전과 체제 생존’의 포기 상황으로 몰고 갈 수 있는 이해 당사국들의 힘과 의지”라고 했다. 그는 “결국 북한에 대한 레버리지(지렛대)를 강화하는 일”이라며 “미국이 북한의 운명을 결정지을 힘과 능력이 있다고 한다면, 우리의 레버리지는 ‘미국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고 이것이 곧 한미공조”라고 했다. 그는 이런 관점의 연장선상에서 “비핵화 검증이 어느 정도 끝날 때까지 대북 제재 완화를 늦추고 군사적 옵션의 신뢰성을 유지하는 게 협상 레버리지의 유지를 위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천 이사장은 대북전단살포금지법 등 과도한 눈치보기식 대북 정책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대북 지원을 비핵화 진도와 연계하는 정책을 추진하자 북한은 온갖 악담과 비난을 퍼부었다”며 “그러나 천안함 폭침에 대한 보복으로 우리가 군사분계선 지역에서의 대북 확성기 방송·전단 살포를 금지한 2004년 6·4 합의를 파기하자 북한은 막후에서 대화를 집요하게 구걸했다”고 했다. 천 이사장은 “남북 대화에서 북한이 그때처럼 저자세로 나왔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며 “북한에 호의를 보이고 환심을 사는 것이 대화 분위기 조성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대북 레버리지를 강화하는 데는 소용이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