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장 빌리 와일더 감독의 1950년 영화 ‘선셋 대로(Sunset Boulevard)’는 이미 대중의 뇌리에서 사라지고 있는 무성영화 시대의 스타 여배우였지만 이제는 한물간 배우에 불과한 노마 데스먼드라는 인물을 통해 할리우드의 욕망의 이면을 치밀하게 그려낸 영화사의 걸작이다. 화려했던 과거에 집착하는 노마 역을 맡은 글로리아 스완슨의 명연기는 오랫동안 인구에 회자됐다(실제 무성영화 시절의 스타였던 그는 이 전설적인 연기로도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받지 못했다!).
짙은 음영의 흑백 화면은 허무하리만치 냉소적이다. 무성영화 스타일의 과장된 연극적 표현으로 현실과 환상을 혼동하는, 그래서 결국 광기로 이르는 여배우의 복잡한 내면이 섬세하게 펼쳐지는 이 영화는 40여 년 뒤인 1994년 뮤지컬의 제왕인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뮤지컬로도 만든다. 이때의 타이틀 롤은 영화배우로도 뛰어난 연기력을 인정받은 대배우 글렌 클로스가 맡아 이목을 집중시켰다. 글로리아 스완슨이 그랬던 것처럼 글렌 클로스 또한 일곱 번이나 오스카 후보에 올랐지만 남성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때론 악몽이 되는 것을 두려워 않는 그의 캐릭터 때문에 수상 소감을 발언하는 기회를 한 번도 가지지 못했다.
그러나 뮤지컬 무대 위의 그는 ‘레미제라블’ 영화판을 망쳐놓은 러셀 크로와는 완전 다르다. 그는 노래에 있어서도 발군의 가창력과 완벽한 무대 장악력을 단숨에 보여준다. 어제의 환상에 취해 부르는 ‘As If We Never Said Goodbye’는 한마디로 압권이다. “그래, 우린 한 번도 안녕이라고 한 적이 없는 것처럼 보여/ 우린 세상에 꿈꾸는 새로운 길을 가르쳐 주었지(Yes. Everything’s as if we never said goodbye/ We taught the world new ways to dream).”
한국 영화가 세계의 변방이던 그때, 1987년 베네치아 영화제와 1989년 모스크바 영화제의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던 배우 강수연이 훌쩍 세상을 떠났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이었다.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