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2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 컬롬비아대학교에서 친팔레스타인 학생들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동부의 명문대 코넬대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둔 학내 갈등 격화로 2일(현지 시각) 긴급 휴교 방침을 발표했다. 코넬대는 “오는 3일 있는 모든 강의를 휴강한다”며 “지난 몇 주 동안의 특수한 압박과 긴장 고조를 감안한 조치”라고 밝혔다. 코넬대에선 최근 유대계 학생들을 총으로 쏘겠다고 협박하는 글을 올린 재학생이 기소됐고, 이 사건을 놓고 친(親)이슬람·친이스라엘 학생들의 갈등이 심화해 정상적인 수업이 불가능해진 상황이었다. 문제의 학생은 캠퍼스에서 총기를 소지하고 온라인 게시판에 “유대인 여성을 성폭행하겠다” “유대인이 낳은 아기들을 참수하겠다” 등의 글을 올렸다가 기소됐다.

지난달 7일 발발한 이스라엘·하마스의 전쟁이 세계 각지에서 문화 전쟁 양상으로 확산하는 가운데 미 대학가가 이 같은 갈등의 가장 치열한 전장(戰場)으로 변해가고 있다. 하버드·예일·컬럼비아 등 명문대를 포함한 미 대학가의 진보적 학풍과 대학에 대한 유대인들의 막강한 재정적·문화적 영향력, 미 정부의 친이스라엘 기조 등이 충돌하며 갈등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미국의 보수 매체 ‘애큐러시 인 미디어’(AIC)는 전쟁 발발 후 전쟁의 기점이 된 하마스의 7일 기습 공격에 대한 책임을 이스라엘로 돌린 하버드·컬럼비아대 학생의 이름과 사진을 대형 전광판에 공개했다. 온라인엔 ‘하버드·컬럼비아의 대표적인 유대인 혐오자들’이란 문구와 함께 이스라엘 비난 성명에 서명한 학생들의 이름과 사진을 올렸다. 반(反)이슬람 시위대 등이 학생들을 공격할 위험을 키운 것이다. 맨해튼 북부에 있는 컬럼비아대는 원래 외부인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지만, 한 이스라엘 학생이 도서관 앞에서 폭행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지난달 12일 이후 학생·교직원만 출입할 수 있도록 교문을 통제하고 있다.

그래픽=송윤혜

예일대 학보사인 ‘예일 데일리 뉴스’는 최근 친이스라엘 재학생 사하르 타르타크가 쓴 칼럼 중 ‘하마스가 여성을 성폭행하고 남성을 참수했다’는 내용을 멋대로 삭제해 논란이 됐다. 지난달 29일 편집장인 아니카 세스는 사과문을 게재하고 “수정 조치는 다른 매체의 보고와 수정을 모델로 삼았다”고 밝혔다. 유대계 학생 비율이 높은 루이지애나주(州) 툴레인대 인근에서는 재학생 3명이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대의 공격을 받아 다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스라엘의 우방인 미국의 기본적인 기조는 친이스라엘이고, 이번 전쟁에 대해서도 조 바이든 대통령 등이 이스라엘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표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대학에서 유난히 갈등이 증폭되는 것은 대학의 진보 지식인들이 주로 주창해온, ‘약자에 대한 옹호’를 중심으로 하는 PC(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주의가 팔레스타인 지지 목소리를 키워 기존 친이스라엘 기조와 충돌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대학생 중 상당수가 군사력·경제력이 이스라엘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뒤지는 팔레스타인을 ‘약자’로 설정하고 지지한다는 것이다.

이슬람 테러 조직이 저지른 9·11 테러(2001년 발생) 이후 미국을 휩쓴 반이슬람 문화를 흡수하지 않은 2000년대 초반 출생 대학생들이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며 기성세대와 갈등을 빚는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코노미스트는 “하마스 등 이슬람 무장 집단에 대한 기성 미국인의 시각을 형성한 9·11 테러에 대한 직접적인 기억이 20대들에겐 거의 없다”며 “이들은 오히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억압하는 횡포를 부린다며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데, 이로 인해 반이슬람 세력과의 충돌이 발생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미 대학들이 유대인 기부자 등의 주장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해 친팔레스타인 행사 등을 저지함으로써 갈등을 오히려 키웠다는 지적도 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프렌치는 2일 “미국의 헌법에 명시된 표현의 자유는 듣기 불편하거나 악의적이라 여겨지는 목소리도 용인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대학이야말로 이 같은 자유주의 정신을 가르쳐야 하는 곳”이라며 “플로리다대 등 일부 대학이 불편하고 위험하게 여겨진다는 이유로 학내 팔레스타인 지지 모임 등을 막으면서 오히려 분쟁이 측면이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