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가 연초 대통령 앞에서 발표한 ‘2023년 주요 업무 추진 계획’의 첫째 사항은 탄소 중립 이행을 위해 ‘국가 탄소 중립 녹색 성장 기본 계획’을 이달까지 완성해 발표한다는 것이다. 기본 계획에 담을 부문별·연도별 온실가스 감축 이행 로드맵을 전환·산업·수송·건물 등 약 10부문으로 망라해 연도별로 배출 목표를 정하겠다는 의미다. 과연 이런 로드맵은 현실성을 갖고 진행되고 있을까? 현재 국내 상황을 조금만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어느 부문도 현실적으로 목표를 달성하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목표 설정부터 국내 산업에 미칠 영향을 잘 따져봐야 한다.
지난 정부에서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내놓으면서, 우리나라는 35%라는 목표 수치까지 법에 명시하는 유일무이한 국가가 됐다. 미국은 탄소 중립을 선언했지만, 명시적 방안이 없으며 중국·인도 등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국가도 시점을 2060년 이후라고 밝혔을 뿐 수치를 적시하지도 로드맵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NDC는 국제법적으로 구속력이 없고 처벌 조항도 없다. 다만 후퇴 금지 조항이 있기 때문에 여러 나라가 실현 가능한 수준에서 목표를 정하고 있다.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 감축하겠다는 목표는 연간 감축 목표로는 4.17%에 이르는 전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21년 잠정 배출량이 늘어나면서 8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연간 감축 목표는 4.8%까지 확대됐다. 목표를 내놓자마자 매년 달성해야 하는 목표가 더 늘어나버리는 무리한 계획을 내놓은 것이다.
NDC 목표 상향이 가져온 허구적 발상은 산업 부문에서는 더 심각하다. 반도체·석유화학·자동차·철강 등 우리의 주력 수출 품목은 대부분 에너지 다소비 구조다. 공정상에서 전환하는 것도 어렵지만, 그보다 NDC 목표 달성만을 위해 석유·천연가스·석탄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온실가스 감축 이행 로드맵이 만들어진다면 이들 주력 수출 품목은 더는 국내에서 생산하기 어려워진다. 결국 우리의 주력 산업이 해외로 이전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이런 행태는 그린워싱(green washing)일 뿐 글로벌 온난화를 줄이는 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많다.
기술 개발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저감하라고 하지만, 당장 에너지 대체가 불가능한 산업에 이를 요구하는 것은 억지일 뿐이다. 철강에서 수소 환원 제철로 넘어가기까지는 엄청난 기술 진보와 시간이 필요하다. 비행기에 쓰는 항공유를 바이오유나 배터리로 대체할 수 있을까? 어느 정도 가능할지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국내 정유 업체와 석유화학 업체들은 강력한 국제 경쟁력을 지니고 있으며 저렴한 생필품을 공급하는 원천 역할을 하고 있다. 탄소를 저감하고자 한다면 우리 생활에서 플라스틱을 안 쓰는 것이 가능해져야 한다. 재생에너지만으로 플라스틱을 대체할 수 없다. 전기차만으로 모든 승용차와 트럭, 버스 등을 대체할 수도 없다. 늘어나는 전기화 수요를 어떤 저렴한 전기 생산 방식으로 다 뒷받침할 수 있는지 대안을 내놓으면서 에너지 전환과 탄소 중립을 얘기했으면 한다.
현 정부는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국내 산업 보호를 위해 적극적으로 할 말을 하면서 실리를 챙기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정부에서 유럽의 탄소국경조정세 등에 끌려 다니고 유럽의 산업 정책에 맞장구치면서 끌려다녔던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NDC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다. 국내 산업 경쟁력 유지와 미래 성장 동력 관점에서 추진해야 할 때임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