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세(浮世), 덧없는 세상이다. 세상의 인연들이 부질없이 느껴질 때가 있다. 몇 년 동안 쌓아 올린 신뢰가 한순간에 무너져 진심은 외면당하고 진실은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어디 인간관계뿐이랴. 인생 자체가 본디 한바탕 꿈처럼 허무한 것이 아닌가.
채규엽과 김선초는 허무한 세상을 뜻하는 ‘뜬세상’이라는 노래를 1932년 3월에 콜롬비아 음반 회사에서 발매하였다. 그보다 한 달 먼저 가수 이명진이 ‘부세’라는 제목으로 이 노래를 시에론 음반 회사에서 발표하기도 했다. ‘뜬세상’은 전체 3절의 ‘부세’에 새롭게 4절을 덧붙이고, 1절과 2절을 5절과 6절에서 반복하였으므로 ‘부세’를 확장한 노래다.
‘뜬세상’을 작사하고 노래한 채규엽은 일본 주오음악학교(中央音樂學校)를 졸업한 성악가인데, 대중가요 가수로는 1935년 레코드 가수 인기투표에서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명성을 떨쳤다. 1930년에 ‘채동원’이라는 예명으로 ‘아리랑’ 음반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가수 활동을 시작한 그는 같은 해에 발표한 ‘유랑인의 노래’에서 작사와 작곡에 노래까지 하였으니, 우리나라 최초의 ‘싱어송라이터’라 할 수 있다.
당시 근화여학교(현 덕성여대) 음악 교사로 재직하면서 대중음악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대중음악계에 투신한 채규엽은 탄탄한 음악적 기본기를 바탕으로 초기 대중음악사에서 의미 있는 노래를 많이 발표했다. 하지만 일제가 1933년부터 실시한 음반 검열이 그의 발목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그가 노래한 ‘아리랑’, ‘서울 노래’, ‘종로 네거리’, ‘조선의 노래’ 등이 ‘뜬세상’과 더불어 모두 금지곡 처분을 받았기 때문이다.
‘뜬세상’은 세태 비판적인 노랫말로 이루어져 있는데, 특히 3절과 4절이 심상치 않다. “저녁밥을 먹고서 시가를 돌자 죽은 개 소리는 컹컹 짖는다. 요릿집 문 앞에 굶어 죽은 놈 은행 문 앞에는 빚 졸리는 놈”의 3절과 “오막살이 초가에 모기 쫓는 소리 분벽사창 양옥에 피아노 소리 문명의 소리는 개미 콧소리 동정심이라고는 모기 뒷다리”의 4절이 부조리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어 일제의 신경을 자극한 듯하다.
현실 비판적인 노래도 부르고 인기 가수로 명성을 구가하던 채규엽은 1930년대 중반 이후, 문란한 사생활로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켜 여러 차례 구속되기도 했다.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으니 얼마나 허무한가. 그를 보노라니 인생사 덧없다는 생각이 새삼 든다. 그런데도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 우리네 삶이니, 허무의 역설이다. 비록 쉽지 않지만, 초심을 잃지 않고 묵묵히 자기 길을 가다 보면 그 길 끝에서 어쩌면 찬란한 무지개를 만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