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부산에서 만난 자동차 부품업체 사장들은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현대차·기아가 독주하는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이른바 ‘르쌍쉐’라 불리는 중견 자동차 3사가 다시 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르노코리아·KG모빌리티(쌍용)·쉐보레(한국GM)는 내수보다는 수출용 차종으로 해외 시장을 공략했다. 수출이 날개를 달면서 르노코리아는 작년 3년 만의 흑자, KG모빌리티는 지난 1분기 분기 기준 7년 만, 한국GM은 작년 9년 만에 흑자를 냈다.
이 3사에 납품하는 지방의 중소 부품업체도 모처럼 활기를 띠었다. 수출 부진이 계속되는 가운데 자동차 수출만 나 홀로 질주하는 데다 현대차·기아가 아닌 중견 자동차 3사에도 훈풍이 분 건 실로 수년 만이다. 장기간 이어진 공장 노조 파업에 코로나, 반도체 수급난 등 각종 악재를 버텨온 업체 사장은 모처럼 만난 기자에게 할 말이 많은 듯했다. “2020년엔 한 달에 열흘씩 휴업하면서 정부 보조금을 받아 버텼어요. 지금은 오히려 일할 사람을 못 구해 구인난입니다” “3년 전만 해도 물량이 없어서 진짜 공장 문 닫는다고 했죠. 우리끼리는 수출차가 구세주다, 효자다 그래요”. 공장 라인도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런 얘기를 기사에 담았다.
그런데 기사가 나가자 동료 업체 사장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다고 한다. “우리 아직 매출 회복되려면 멀었는데 벌써 잘된다고 하면 어떻게 하느냐” “잘된다고 했다가 납품 단가에 영향 주는 거 아니냐” “일감 많아 공장 종일 돌린다고 하면 어쩌느냐. 주 52시간제 위반한다고 의심받는 거 아니냐”. 모 업체 사장은 취재에 응했다가 동료 업체들의 걱정 섞인 항의 전화를 받느라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고 했다.
이런 항의 속에 중소기업인들이 겪는 고충이 다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납품 단가 눈치를 보고, 일감이 있어도 당장 주 52시간제를 맞추려 공장 돌릴 시간을 걱정해야 하는 현실 말이다.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 이를 반영해 대기업 등에서 중소기업의 납품 단가를 인상해 주는 납품단가연동제가 국회를 통과해 올해 10월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과연 이 제도가 제대로 안착될지 여전히 불안해하고 있다. 또 정부는 업종과 무관하게 적용되고 있는 현행 주 52시간제 상한제를 개편해 근로시간을 유연화하겠다고 했지만, 현장에선 당장 공장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는 제도가 답답하다. 우리나라 0.3% 대기업이 전체 영업이익의 57%를 가져가고, 99% 중소기업이 25%를 가져가는 극심한 양극화 현실 속에서 각종 규제까지 중소기업인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중소기업을 취재하다 보면 예상과 다른 반응을 접할 때가 잦다. 해외 수출로 매출이 높은 한 제조업체 대표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였다. 회사가 잘된다는 얘기라 쉽게 인터뷰가 성사될 줄 알았지만, 거절당했다. “우리같이 작은 회사들은 그저 쥐 죽은 듯이 있는 게 답입니다. 회사 잘된다고 하면 여기저기서 트집 잡히고 세금 들여다보고, 좋을 게 없어요”. 사정이 어려운 업체는 또 다른 이유로 몸을 사린다. “회사 어렵다고 기사 쓰시게요? 은행이 귀신같이 알고 대출 끊겨요. 대출 안 나오면 진짜 공장 문 닫아야 됩니다.”
잘되면 잘된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말도 못 하는 현실. 우리나라 기업인들이 마음 놓고 경영할 수 있도록 낡은 규제부터 화끈하게 풀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