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니까 전 세계 독재자들이 계속 (독재를) 이어갈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미 상원 밥 메넨데스 외교위원장이 26일(현지 시각) 청문회에서 소리를 높이자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표정이 굳어졌다. 전날 터키 법원이 자국 환경 운동가에게 ‘정부 전복’ 혐의를 씌워 종신형을 선고하자 국무부는 성명을 내고 “매우 걱정스럽고 실망스럽다”고 했었다. 이를 두고 메넨데스 위원장은 “그 정도 표현으로 되겠나. 국무부가 더 강하게 규탄했어야 한다”고 했다. ‘인권’을 미 외교정책의 핵심 원칙으로 내세웠던 블링컨으로선 뼈 아픈 지적이었을 것이다.

조 바이든(가운데) 미국 대통령과 밥 메넨데스(오른쪽) 미 상원 외교위원장외교위 민주당 간사가 지난 2013년 10월 워싱턴DC 의사당에서 열린 한 행사에 참석해 나란히 서있다. 바이든은 당시 부통령이었고 메넨데스는 외교위 민주당 간사였다./게티이미지코리아

메넨데스 위원장은 집권 여당(민주당) 소속이다. 그런데도 이날 청문회 종료 전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전 세계 고급 반도체 부품 대부분을 생산하는 대만을 중국이 점령한다는 건 곧 중국이 전 세계 반도체를 장악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에 대한 긴박감을 갖고 있는가” “아세안 지역에서 (제대로 된) 경제·무역 어젠다 없이 중국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어렵다” 같은 ‘쓴소리’가 13분간 이어졌다.

‘쿼드’ 동맹국인 인도가 최근 러시아 원유를 대량 수입하는데도 미 정부가 침묵하는 데 대해선 “국무장관으로서 미국이 취해야 할 입장을 더 명확하게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날 의회에선 “민주당 위원장이 공화당 의원들보다 더 날 선 발언을 내놨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는 최근 워싱턴 정가에서 ‘백악관도 두려워하는 여당 의원’이라고 불린다. 대통령도 각종 외교 현안에 대한 그의 입장과 발언을 의식한다는 뜻이다. 지난달 미 정부가 모자란 원유를 세계 최대 원유 보유국 베네수엘라에서 충당하기 위해 물밑 대화를 벌인 것이 공개됐을 때도 메넨데스는 반기를 들었다. 성명을 내고 “독재 정권의 주머니를 채워줘선 안 된다”고 했다. 이후 백악관은 이런 옵션을 접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정부와 척진 것은 아니다. 한 의회 관계자는 기자에게 “행정부와 적당한 긴장 관계에 있는 것은 바람직한 것 아니냐”고 했다.

국민을 대신해 행정부를 감시·견제한다는 입법부 취지는 한·미가 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도 당연한 모습이 생경해 보이는 건 지난 5년간 한국 국회에서 여당 의원들이 정부 정책에 대해 비판하거나 문제제기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경제·안보 등 모든 현안을 만기친람하는 국정 운영 방식에 민주당은 계속 침묵해왔다. 그런 그들이 정권 말 자신들 비리 의혹 수사를 막기 위해 ‘개혁’을 앞세워 폭주하고 있다.

이를 막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예비 집권당’ 국민의힘도 윤심(尹心)만 살피는 ‘거수기 당’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적지 않다. 입법부의 제대로 된 견제 없이 정권이 독주의 길로 가는 일이 반복돼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