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로또

케스린 패이지 하든 지음|이동근 옮김|에코리브르|416쪽|2만3000원


태어날 때 아기는 ‘수저’(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를 물고 태어난다. 그런데 태어날 때 모든 아기는 복권을 하나 더 긁는다. 책 제목이 바로 그것이다. ‘유전자 로또’. 난자 1개와 정자 1개가 만났을 때 가능한 유전적 조합은 최소 70조. 모든 인간은 그 70조분의 1의 결과물이다. 같은 부모 아래에서 태어난 형제·자매가 다른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누군가는 좋은 의미에서 유전자 ‘몰빵’일 수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물고 태어난 숟가락은 본인의 노력 여하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어떤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는지도 그렇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됐다”는 미국 독립선언문의 문구는 참이다. 모든 인간은 70조분의 1의 결과물이고 어떤 유전 조합을 가지고 태어날지는 순전히 운의 산물이다. 평등하게 창조됐지만, 창조물은 평등하지 않다. 그렇다면 그 불평등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미국 텍사스대 심리학과 교수로 행동유전학에 천착해온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다. 불평등이 로또의 결과물이라면, 그 책임은 개인이 아니라 사회에 있고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모든 것은 유전된다’고 한다. 현대 유전학이 내놓은 통계를 보면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뛰어난 어휘력, 빠른 정보 처리 능력, 높은 질서 의식, 사회적 성공을 좌우한다는 그릿(Grit·열정과 끈기) 같은 덕목은 상당 부분 태어날 때 얻은 유전자 조합의 결과물이다. 저자는 유전병뿐 아니라 반사회성 성격장애, 성적 지향 및 여러 질환도 유전자 조합에 큰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인생은 상당 부분 ‘운빨’이다.

사람은 태어나며 복권 두 개를 긁는다. 하나는 어떤 사회적 배경을 가진 부모를 만나느냐. 다른 하나는 70조 가지의 유전자 조합 중 어떤 것을 가질 것이냐. 저자는 두 복권에서 ‘꽝’이 나와도 살 만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게티이미지코리아

흔히 미국의 ‘능력주의’를 비판할 때 인용하는 통계가 있다. 소득 분포 상위 25% 가정 자녀가 소득 하위 25% 가정 자녀보다 대학교를 졸업할 확률이 4배 더 높다는 것이다. 배경을 능력으로 착각한다는 지적이다. 저자는 “똑같은 현상이 유전자에서도 관찰된다”고 한다. 공부를 잘하도록 하는 유전자가 얼마나 많은지 살펴보니, 상위 25%가 하위 25%보다 대학교를 졸업할 확률이 역시 4배였다는 것이다. 유전자의 영향력은 일란성 쌍둥이에게서 도드라진다. 같은 부모 유전자를 거의 똑같이 공유하며 똑같은 환경에서 자라나는 일란성 쌍둥이는 “대학 입학시험 점수는 거의 완벽하게 같고, 최종 교육 정도도 꽤 비슷하다”고 한다.

이외에도 유전자의 영향은 지대하다. 학교생활을 어렵게 하는 반사회성 성격장애는 80% 이상 유전된다. ‘노오력’하면 인생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는 통념(누구든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불어넣어 주면서 책 ‘그릿’은 베스트셀러가 됐다)과는 달리 노력하는 것도 유전적으로 물려받는 재능이라고 저자는 통계를 근거해 말한다.

이쯤 되면 눈치챘겠지만, 저자의 주장은 간단하다. 우수한 유전자 조합도, 부모의 우월한 사회적 지위도 개인의 노력과는 무관하다. 그러나 특히 미국에서 사회적 성공은 그 두 로또에 좌우된다. ‘능력주의’를 표방하면서 ‘내가 잘났고 노력해서 성공했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사실은 마땅히 칭찬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기보다는 태어나면서 긁은 두 번의 로또 결과가 당첨이었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이 두 로또에서 누군가는 본인의 의사와는 전혀 관련 없이 ‘꽝’을 뽑고 있다. 이를 방치하는 사회는 과연 공정한지 저자는 묻는다.

여러 심리학 연구를 보면 사람은 불평등이 선택이 아니라 운에서 비롯될 때 ‘재분배’를 더 지지한다. 본인이 좌파라고 거듭 밝히는 저자는 이렇듯 사회적 성공이 부모의 사회적 지위와 태어날 때 만들어진 유전자 조합 때문이라는 ‘운’에서 비롯됨을 이해한다면 사람들이 사회적 재분배에 보다 수긍할 것이라고 말한다.

동시에 저자는 ‘우생학’의 망령 때문에 유전자가 불평등의 원인이라고 언급하기를 꺼리는 사회적 분위기도 문제라고 한다. 그는 미국 사회가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공교육 개선에 나섰음에도 실패한 원인으로 이를 지적한다. 사회경제적 배경에는 관심을 쏟지만, 학생 개개인의 유전적 특성을 모르는 상태로 사실상 효과가 거의 없는 정책에 돈을 쏟아부으면서 더 시급한 정책에는 돈을 못 쓰고 있다는 말이다.

존 롤스는 ‘정의론’에서 ‘자연 로또’(natural lottery)라는 은유를 사용했다. 롤스는 사회경제적 차이에 주목해 한 말이었지만, 저자는 이를 유전자로 확장한다. “로또는 유전을 설명하는 완벽한 은유”라는 것이다. ‘공정하다는 착각’으로 ‘능력주의’를 환기시킨 마이클 샌델도 유전학에 정통했다면 이 책의 논지에 동의했을 것이다.

롤스는 무지의 장막을 가정했다. 모두 다시 태어났을 때 자신이 어떤 형편일지 모르는 상황에서 사회를 재조직하자는 사고 실험이다. 부모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아이가 어떤 유전자 조합으로 태어날지 부모는 예상할 수 없다.(무지의 장막) 그렇다면 자녀가 어떤 세상에서 살아가게 하고 싶은가. 운이 좋아 ‘능력 있다’고 칭송받는 사회인가, 운이 나빠도 사회 구성원으로 품어주는 사회인가. 매년 세계 최저 출산율 기록을 세우는 한국 사회에 더 중요한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