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1일 국무회의에서 한일 관계 정상화에 나선 배경과 당위성을 설명하며 “한일 관계도 이제 과거를 넘어서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강제 징용 피해자들 일부는 “일본의 진정한 사과와 정당한 배상 없이 면죄부를 줄 순 없다”며 반발했다. 본지는 강제 징용 피해자들을 수년 동안 변호해 온 피해자 측 법무법인 해마루 임재성 변호사에게 정부 해법에 대한 반대 이유와 입장을 들어봤다.
강제 징용 피해 소송 대리인단 임 변호사는 21일 통화에서 “배상안에 동의하는 유족들은 절차대로 배상을 받되, 반대하는 생존자 3명의 뜻도 존중받아야 마땅하다”고 했다. 그는 “정부 배상안에 동의하지 않는 피해자가 한 분이라도 계신다면 계속 일본 기업을 상대로 강제 매각을 통한 현금화 절차 소송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정부 배상안에 불복하고 법적 다툼을 계속 벌이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임 변호사는 지난 13일 양금덕(94) 할머니 등 생존자 3명의 제3자 변제 방식에 대한 거부 입장을 정부 측에 대신 전달했다. 임 변호사에 따르면 강제 징용 배상 대상 15명 중 4명의 유족이 정부의 강제 징용 해법에 찬성 의사를 표했다고 한다. 그 외 유족 8명은 명확한 의사를 나타내지 않은 상태다. 정부는 생존자 3명이 배상금을 수령하지 않을 경우 법원에 배상금을 맡기는 공탁 절차를 진행할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하지만 임 변호사는 “당사자가 거부하는 한 공탁이 불가능하다”며 “그럼에도 공탁을 한다면 제3자 변제가 불가능하다는 의사 표시를 법원에 할 것”이라고 했다.
대법원은 2018년 10월 일본 기업들이 강제 징용 피해자 이춘식 할아버지 등 4명에게 1억원씩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피해자들은 일본 기업이 돈을 주지 않자 압류 강제집행을 신청한 상태다. 그는 “한국 정부가 국내 절차상 피해자들의 채권을 다 소멸시키겠다고 일본 정부에 약속했을 텐데, 대법원이 강제 매각을 통한 현금화를 결정할 경우 정부가 진퇴양난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 해법에 대해 “민법상 당사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제3자 변제가 불가능하다”며 “법률적으로 대한민국 정부가 법에 어긋날 수 있는 사안을 밀어붙이고 있고 결국 시한폭탄을 떠안고 있는 꼴”이라고 했다. 정부가 징용 배상 해법으로 밝힌 ‘제3자 변제’가 대한민국 법률상 위법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임 변호사는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위자료 청구권이기 때문에 제3자가 변제할 수 있는 성질의 채권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채무 변제는 제3자도 할 수 있지만 ‘채무의 성질 또는 당사자의 의사표시로 제3자 변제를 허용하지 아니하는 때’는 예외로 규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외교부는 “제3자인 재단이 배상금을 지급해도 법률적 문제가 없다는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았다”고 했다.
정부가 지난 6일 제3자 변제 방안을 공식화한 전후로 일부 시민단체들이 반대 여론을 조장하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끼는 유족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임 변호사는 “보수냐 진보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가장 중요한 건 피해자들의 뜻”이라며 이들 단체와 피해자들 입장을 무조건 동일시할 순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각에선 현 정부를 반대하기 위해 반일 여론을 조장한다고 하는데, 유족들은 문재인 전 대통령 당시 정부가 강제 징용 해결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 때 야권 원로인 문희상 국회의장은 ‘1(한국 기업)+1(일본 기업)+α(한일 국민 성금)’를 골자로 한 3자 배상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