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식서 만난 이재명 대통령·조희대 대법원장 - 4일 오전 대통령 취임 선서식에서 이재명(왼쪽) 대통령이 조희대 대법원장과 인사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원회를 열고 대법관 수를 14명에서 30명으로 늘리는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남강호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새 정부 출범 첫날인 4일 대법관을 14명에서 30명으로 늘리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소위에서 통과시키면서 대법관 증원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법조계에서는 상고심 재판이 한층 충실하게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정부·여당이 대법원 구성을 입맛대로 주도할 거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재판 부담 줄어 심리 충실해질 듯”

대법관 증원은 꾸준히 필요성이 제기돼 온 사법부의 숙제였다. 2023년 기준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대법관 12명의 1인당 사건 처리 건수는 3305건으로, 산술적으로 하루 9건 이상씩 선고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구체적인 심리 없이 원심대로 확정하는 ‘심리불속행’ 결정이 내려지는 경우가 많다. 2023년 민사 본안 사건의 70%(8727건), 가사 본안 사건의 84%(588건)가 심리불속행으로 종결됐다. 김상겸 동국대 명예교수는 “상고심에 올라오는 민형사 사건이 점점 복잡해지고 환경·세금 분야 등 어려운 소송이 늘어나는데 대법관 수는 18년째 그대로”라며 “개별 사건을 집중 심리하기 위해 대법관을 늘릴 필요는 있다”고 했다.

그래픽=김현국

다만 대법관 수만 늘린다고 사건 적체가 해결되거나 상고심 심리가 충실히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대법원은 대법관 증원안을 급히 처리하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대법원 한 관계자는 “대법관 증원은 상고제 개편을 포함해 사법제도 전반에 대한 논의와 함께 숙고해야 할 문제”라며 “상고심의 역할과 기능을 어떻게 조정할지 면밀히 검토한 뒤 필요한 만큼 대법관을 늘리는 게 맞는다”고 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출신 박찬운 한양대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법관 증원이 정부 출범 후 제일 먼저 할 일인가. 증원에 기본적으로 찬성하지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할 일은 아니다”라고 썼다.

◇“코드 맞는 대법관 늘려 대법원 장악”

민주당이 추진하는 ‘대법관 증원’의 가장 큰 문제는 정부와 민주당이 정치적 성향이 맞는 대법관을 대폭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법원조직법이 본회의를 통과하면 이재명 대통령은 임기 5년 동안 대법원장 포함 대법관 10명을 교체하고, 늘어나는 대법관 16명을 추가로 임명할 수 있게 된다.

물론 헌법이 보장한 ‘대법원장 제청’ 절차가 있지만, 임명권을 가진 대통령이 원치 않는 인사를 제청하긴 어렵다. 대통령과 대법원장의 추천 인사가 다를 경우 관례적으로 사전 조율을 거치는 과정도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한 고법 판사는 “대통령이 민변 출신 등 진보 성향 법조인을 후보로 낙점하면 대법원장이 거부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며 “대법관 제청을 두고 대법원과 대통령실 간 갈등이 커질 수 있다”고 했다. 설사 대통령이 대법원장 제청을 받아주더라도, 거대 여당인 민주당이 국회에서 반대하면 제청권이 무력화될 수 있다.

한 부장판사는 “1·2심 법원에서 형사 재판 5개를 받고 있는 이 대통령이 대법관 증원으로 자신에게 유리하게 대법원을 구성하려고 하는 것”이라며 “‘누구도 자신의 사건에서 재판관이 될 수 없다’는 법 원칙을 무너뜨리는 시도”라고 지적했다.

해외에서도 정치권력이 대법관을 늘리는 방법 등으로 대법원을 장악해 사법부 독립성을 훼손한 사례는 여럿이다. 베네수엘라는 2004년 대법관을 20명에서 32명으로 늘려 친정부 인사들로 채워 행정부가 사법부를 장악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멕시코는 법관 전원을 국민 투표로 뽑는 직선제를 도입해 친여(親與) 성향 인사들의 대거 당선이 유력한 상황이다.

◇“법리·판례 세우는 전합 부실화 우려돼”

대법관 증원은 통일된 법리와 새 판례를 제시하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기능이 부실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행 전합은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대법관 13명이 국민적 관심 사건이나 사회의 근본적 가치 정립이 필요한 사건 등을 심도 있게 다룬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출신 변호사는 “대법관이 30명이 되면 목소리 큰 일부가 합의를 주도하면서 찬반 투표식으로 운용될 가능성이 높아 심도 있는 심리가 어려워진다”면서 “대법관이 늘었을 때 소부나 전합 운용 방법 등을 어떻게 할지부터 심사숙고해야 한다”고 했다.

한편, 예산과 공간 등 실무적 문제도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