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 없는 토요일

윤지양 시집| 136쪽 | 민음사 | 1만3000원

제43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이자 윤지양의 두 번째 시집 ‘기대 없는 토요일’은 언어적 낯설게 하기가 극대화될 때 개시될 수 있는 시적 새로움의 한 전범을 보여준다. 시의 화자가 놓여 있는 전체적인 상황은 이러하다. ‘뼈로 남은 사람/ 일기장을 마주한 채 앉아 있다.’(‘살기’) 그런데 평범한 일기장이 아니다. 뼈로 남은 사람(시적 화자)에게 일상은 더 이상 친숙한 삶의 무대가 아니며, 일기는 경험했던 일들을 기록하는 기억의 텍스트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시인의 일기-시에는 ‘기억에 없는 장소들이 찍혀 있고’(‘이틀’) ‘서로를 모르는 사람들이 정확하지 못한 기억으로 얼핏, 시에 등장’(‘왜 어떤 사람은 서울의 봄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그러지 않나’)하는 이상한 장면으로 가득하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시인에게 잘못된 기억은, 일상의 반복이 중단되고 새로운 감각적 세계로 이어지게 하는 해체의 통로이기 때문이다. ‘나쁜/ 생의/ 반복을 끊을 수 없으면 바꿔야 한다. 여기서 기억의 변환법이 요구된다.’(‘기억의 변환법’) 이처럼 기억의 조직적 착란으로 인해 시인은 미지의 시적 진실에 한 걸음 다가간다.

프랑스 시인 로트레아몽은 시적 아름다움을 일컬어 ‘해부대 위에서의 재봉틀과 우산의 우연한 만남’이라 비유한 바 있다. 윤지양의 시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존재들의 예기치 못한 이질적 만남이 실험되는 미학적 해부대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죽은 줄 알았던 것// 태어나기 직전인 것// 우글우글한 것(’입덧’)들이 다시 태어나고, ‘파편들 위로/ 통과하는 빛’(‘빛과 소리 소문’)이 아름답게 광채를 발하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강동호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