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 60대 이상 확진자 대상 팍스로비드 효과 분석

요양병원 확진자들에게 화이자 경구용(먹는) 코로나 치료제 ‘팍스로비드’를 투여한 결과, 약을 복용한 환자 중증·사망률이 복용하지 않은 환자보다 절반 가까이 낮아졌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요양병원을 대상으로 제때 팍스로비드가 공급·투여됐더라면 고령층 사망 사태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3월 2만7000여 명에 달하는 요양병원 집단감염이 발생하고 3월 한 달간 요양병원에서 사망자가 2000명 이상 쏟아진 바 있다. 28일 질병관리청은 지난 2~4월 국내 요양병원 코로나 확진자 1612명을 대상으로 한 ‘팍스로비드 중증 예방 효과 분석’을 공개했다.

◇팍스로비드 중증화율 2.04배 낮춰

이번 조사 대상은 국내 요양병원 5곳 입소자 1161명, 직원 1080명 등 2241명이다. 이 가운데 1612명이 코로나에 확진(발생률 71.9%)됐고, 721명(44.7%)이 코로나 치료제를 처방받았다. 626명(86.8%)은 팍스로비드를, 나머지는 주사형 치료제인 렉키로나주·렘데시비르를 복용했다.

비교 분석 결과, 팍스로비드를 먹은 환자 가운데 중증 진행 비율은 3.69%로, 치료제를 투여받지 않은 확진자 중증 진행 비율(7.14%)보다 51% 낮았다. 팍스로비드 복용 환자 사망률은 3.53%로, 치료제를 투여하지 않은 환자 사망률(5.61%)보다 38% 낮았다. 치료제를 투여하지 않으면 중증화율과 사망률이 팍스로비드 복용 시보다 각각 2.04배, 1.61배 높게 나타난 것이다.

팍스로비드는 현재 만 60세 이상 고령자와 40~50대 기저질환자에게만 처방된다. 방역 당국은 “코로나 중증 위험도가 높은 60대 이상 확진자들을 대상으로 팍스로비드 효과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면서 “다만 기저질환이 위중증·사망에 미친 영향은 따로 구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번에 나타난 팍스로비드 위중증·사망 예방 효과도 당초 제약사에서 밝혔던 임상시험 수치(중증·사망 88% 감소)보다 다소 낮다. 이에 대해 방역 당국은 “임상시험은 일상생활을 하는 만 18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실시하지만, 이번 분석은 기저질환을 보유하고 있는 고위험군 입원 환자를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했다. 이미 건강 상태가 안 좋은 고령층에게 약을 투여한 만큼 기대보다 효과가 떨어졌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지난 2~3월 요양병원 집단감염·사망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방역 당국 집계에 따르면, 지난 3월 사망자(8172명) 중 요양병원·시설에서 사망한 환자 비중은 32.7%에 이른다. 이들 중 상당수는 치료제를 제때 투여받지 못하고 병상 배정을 기다리다 사망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지난 2~3월 코로나 확진자가 대거 쏟아졌지만 초기 팍스로비드 공급이 너무 부족해 고령층이 집중 거주하는 요양병원에도 제때 치료제가 공급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경남권 한 요양병원 관계자는 “지난달까지만 해도 팍스로비드가 너무 부족해 약을 구할 수가 없어 요양병원 직원들이 처방전을 들고 지역 내 약국을 밤늦게까지 돌아다니거나 지자체에 전화해 ‘제발 약 좀 달라’고 읍소해도 못 구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며 “병상 배정만 하염없이 기다리다 치료제도 못 쓰고 속수무책 죽어나간 환자만 수천 명일 것”이라고 했다. 수도권 한 요양병원 관계자도 “요양병원 입소자들은 팍스로비드를 제때 투약하는 게 중요한데, 약을 구하러 다니는 사이 갑자기 상태가 나빠져 돌아가시는 경우가 많았다”며 “적어도 요양병원만큼은 치료제를 충분히 구비해놓고 살릴 수 있는 환자는 살렸어야 했다”고 말했다.

팍스로비드가 감염병전담병원과 생활치료센터 등에만 공급될 뿐, 여전히 요양병원에는 재고가 들어오지 않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요양병원에서는 약 처방만 가능할 뿐, 원내에 재고 약을 구비해놓을 수 없어 확진자가 폭증하거나 공급 물량이 부족하면 언제라도 요양병원발 집단감염·사망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4차 접종 시 고령층 사망 크게 감소

이날 방역 당국은 코로나 백신 4차 접종자가 3차 접종자보다 사망률이 크게 낮다는 이스라엘 연구 결과도 공개했다. 이스라엘 조사 결과, 4차 접종을 받은 60~69세 고령층 사망률은 0.004%로, 3차 접종까지만 받은 같은 연령대 사망률(0.026%)의 6분의 1에 그쳤다. 4차 접종을 받은 70~79세 사망률(0.016%)과 80세 이상 사망률(0.079%)도 같은 연령대 3차 접종자 사망률과 비교해 4분의 1~5분의 1 수준에 그쳤다. 방역 당국은 “60세 이상 3차 접종자의 위중증·사망 예방 효과는 앞으로 지속적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4차 접종을 적극 권고한다”고 했다. 그러나 28일 기준 60세 이상 고령층의 4차 백신 접종률은 12.7%로, 예약률 역시 27%에 그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