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에서 영원한 우방은 없다. ‘깐부’가 되어 이익을 나누는 것은 잠깐이고, 상황이 달라지면 갈라선다. 19세기 말 러시아와 일본이 그랬다. 1894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요동반도를 차지하자 러시아가 훼방을 놓았다. 러시아는 독일, 프랑스와 편을 먹고 일본을 향해 요동반도를 반환하라고 압박했다(3국 간섭). 이를 갈면서 땅을 돌려준 일본은 10년 뒤인 1904년 러시아와 전쟁으로 치달았다.

5년 뒤 갑자기 사이가 좋아졌다. 일본이 꼬리를 낮춘 것이다. 러시아는 동북아에서 일본의 독주를 막으려고 자기 땅 연해주에 미국을 불러들이려고 했다. 그것은 일본의 만주 진출에 큰 걸림돌이 될 수 있었다. 국가 원로 이토 히로부미가 도쿄의 러시아대사관을 직접 찾아갔다. “1902년 일본이 러시아를 배신하고 영일동맹을 맺은 것은 실수”라고 사과하면서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만주까지 연장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협의를 위해 하얼빈에서 코코프초프 재무상을 만나려던 계획은 안중근 의사의 거사 때문에 불발로 끝났다.

볼셰비키 혁명이 터지자 두 나라는 다시 멀어졌다. 일본은 공산화 예방을 명분으로 러시아 내전에 간섭했다. 그러면서 슬쩍 블라디보스토크와 하바롭스크까지 진출했다. 두 나라가 다시 가까워진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때문이었다. 소련은 독일과 전쟁하기 위해서 동쪽에서 병력을 끌어와야 했고, 그러려면 일본과 타협이 필요했다. 일본은 한반도 너머 중국 본토로 진출하는 데 소련의 동의가 필요했다. 두 나라는 상대방의 행동을 묵인하기로 하는, 불가침조약을 체결했다. 계약 기간은 5년이었다.

그러나 그 약속은 5년을 넘기지 못했다. 나치 독일이 패망하자 소련이 돌변했다. 독일 포츠담에서 개최된 미·영·소 정상회담에서 소련은 일본을 향해 전쟁을 선포했다. 국가 간의 관계는 언제든지 뒤집힌다. 그래서 힘을 키워야 한다. 1941년 오늘 소·일 불가침조약이 체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