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반복되는 고통 - 8일 오후 6시 30분쯤 서울 지하철 9호선 여의도역. 이른바 ‘지옥철’이라고 불리는 9호선 역 승강장에 강남 방향으로 가는 급행열차가 도착하자, 타고 내리는 수백명의 승객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2021년 기준 9호선 급행은 서울 시내에서 가장 붐비는 지하철로 꼽혔다. /박상훈 기자

지난 2일 오전 8시쯤 서울 지하철 9호선 염창역. 김포공항에서 출발해 강남 방향으로 향하는 급행열차 1칸에는 이미 160여 명이 타 있었는데, 이 역에서만 80명 안팎이 더 탑승했다. 곳곳에서 “아악” “밀지 마세요” 등 고성이 오갔다. 열차가 출발하자 빽빽하게 맞닿은 인파가 파도처럼 출렁거리기도 했다. 이날 김포공항역에서 여의도역까지 승객은 260여 명까지 늘어났다. 가양역에서 여의도까지 출퇴근한다는 직장인 이신유(31)씨는 “성인 남성인 나도 온몸을 누르는 압력을 매일같이 느끼며 출퇴근하고 있다”며 “열차 안에서 퍼지는 곡소리를 언제까지 들어야 하느냐”고 했다.

서울 지하철 9호선이 매일 출퇴근길에 “숨 쉬기 곤란하다”는 반응이 나올 정도로 혼잡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출퇴근 시간대 급행열차의 밀집이 심하다. 매일이 ‘핼러윈 참사’와 다름없다는 지적을 받은 김포골드라인과 비슷한 상황이다. 지하철 9호선 급행열차의 1㎡당 밀집도는 5명 안팎으로 미 연방 재난관리청의 최대 밀집 권고 2~3명의 2배 수준이다. 김포골드라인의 밀집도 7~8명에 가깝다. 문제는 이와 같은 상황이 악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앞으로 9호선과 연결되는 지하철 노선들이 잇따라 개통될 예정이다. 9호선으로 출퇴근하는 시민들의 우려는 커지고 있다.

2일 오전 8시 20분쯤 9호선 노량진역에 도착한 열차도 승객 280여 명으로 가득 차 있었다. 출입문 바로 앞에 서 있는 3명은 머리와 어깨, 한쪽 팔이 문에 붙어서 기대 있는 상태였다. 노량진역사에서 형광봉을 들고 인파를 통제하던 안전요원은 “계단에서 급하게 뛰어내려와 사람들이 꽉 찬 틈으로 돌진하다 튕겨 나가 뒤로 자빠진 사람도 봤다”며 “오전 7시 30분부터 8시 30분까지 피크 시간대에는 출입문과 4m가량 떨어진 계단 위까지 줄을 선다”고 했다.

9호선은 서울 강서와 강동을 연결하는 지하철 노선으로, 여의도·강남 등 주요 업무 지구를 지나 ‘황금 노선’으로 꼽힌다. 특히 주요 환승역만 지나는 급행열차는 사람이 많이 몰린다. 정우택 의원실이 국토교통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 출근 시간(오전 8~9시) 9호선 급행은 1㎡당 4~5명의 밀집도를 기록해 서울 시내 지하철 중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다. 같은 기간 9호선 일반 열차의 최대 밀집도와 서울 시내 다른 혼잡 지하철의 밀집도는 4명 안팎이었다.

급행열차에 수요가 몰리는 만큼 출퇴근 시간에 급행열차의 비율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9호선의 구조상 쉽지 않다. 9호선은 급행과 일반 열차 선로를 따로 운영하지 않고, 중간 역에서 급행이 일반 열차를 추월할 수 있는 운행 방식으로 운용된다. 이 때문에 급행열차를 늘리면 일반 열차 승객의 대기 시간은 늘어나게 된다. 이렇게 급행열차를 운용한 건 9호선 계획 단계에서 수요를 유발하기 위한 일종의 마케팅이었다. 현재 9호선은 급행열차와 일반 열차가 1대1 비율로 운행되고 있다. 9호선 관계자는 “무작정 급행 운행을 늘리면, 그만큼 일반 열차를 이용하는 시민들의 불만이 커지게 된다”며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겪으며 1대1 비율이 최적이라는 결론을 내놓게 됐다”고 했다.

8일 퇴근 시간대인 오후 6시 30분쯤 서울 지하철 9호선 여의도역에 도착한 급행열차. 전동차 안은 이미 승객들로 가득 차 있는데도 승객들은 인파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고 있다. /박상훈 기자

일각에서는 현재 6량인 9호선에도 다른 서울 지하철과 같은 8량 열차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어려운 상황이다. 9호선 1~2단계 구간(개화역~종합운동장역)은 8량 열차가 운행할 수 있도록 시스템과 설비가 일부 갖춰져 있지만, 2018년 개통된 3단계 구간(삼전역~중앙보훈병원역)은 시설이 6량 기준으로 설계됐다.

이에 따라 9호선 8량화에는 수천억원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9호선 운영사인 서울시메트로9호선이 지난 2019년 대한교통학회에 의뢰한 연구 결과, 6량 열차로 운영되던 9호선을 8량 열차로 전면 교체하는 데 투입될 사업비는 2706억원으로 추산됐다. 6량 기준으로 설계된 신호·통신 설비 등을 증설하고 차량 기지를 확장하는 데 드는 비용이다. 증설 기간도 10년 가까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요를 과소평가해 시스템을 6량 전용으로 설계하면서 9호선 8량화는 사실상 불가능해진 셈이다. 신종호 건국대 사회환경공학부 교수는 “지하철 노선을 계획할 때는 당장의 수요뿐 아니라 앞으로의 도시 계획을 고려해야 하는데, 이런 점이 미흡했던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9호선이 앞으로 더 혼잡해질 것이라는 점이다. 9호선 중앙보훈병원역과 샘터공원역을 잇는 4단계 구간은 2028년 완공을 앞두고 있다. 9호선과 연결되는 노선도 줄줄이 개통된다. 오는 12월에 대곡역과 소사역을 잇는 대곡소사선, 2025년 신안산선, 2028년 위례신사선 등이 운행을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