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믄 안 돼~.” 찰진 사투리에 전혀 고등학생처럼 보이지 않는 배우들이 웃음을 자아낸다. 화질부터 빛바랜 영화 ‘바람’(2009)이 구작으로는 드물게 넷플릭스 영화 국내 시청 순위 3위에 올라 눈길을 끌고 있다. ‘서울의 봄’(2023)과 ‘헬머니’(2015)가 1·2위를 오가는 가운데 지난주부터 3위를 지키고 있는 것.
‘방구석 명작’이 십여 년 만에 OTT에서 제대로 평가를 받은 셈이다. 지난 12일 넷플릭스에 공개된 ‘바람’은 관객 수가 10만에 그쳤지만, 팬들이 ‘비공식 천만영화’라는 타이틀을 붙여준 영화다. ‘닌자 어쌔신’ ‘뉴 문’ ‘백야행’ 등 대작들과 개봉 시기가 겹쳐 주목받지 못했지만, 입소문이 나며 불법 사이트에서 많이 다운로드돼 그런 별명이 붙었다.
이번에 순위를 끌어올린 건 추억의 재관람이다. ‘바람’ 공개 소식을 알린 넷플릭스의 유튜브 영상이 이례적으로 34만회나 조회됐고, 1200여 댓글이 달리며 반응이 뜨거웠다. 팬들이 이 영화를 ‘인생작’으로 꼽는 건 뛰어난 학창 시절 고증 때문이다. 1990년대 부산 지역 상고를 다니며 ‘좀 친다’는 아이들의 서클에 가입했던 ‘짱구’(정우)가 주인공. 한때의 겉멋과 후회, 성장 이야기다. 학원 폭력물 같지만 패싸움은 안 나온다. 어린 시절 주인공을 ‘짱구박사’라 부르며 애지중지하던 아버지의 존재가 중요한 영화다. ‘선재 업고 튀어’ ‘소년시대’ 등 옛 학창 시절을 다룬 콘텐츠가 인기지만 “K학원물의 근본은 이 영화”라고 치켜세우는 팬도 많다. 배우 정우, 손호준, 지승현, 이유준, 유재명 등 지금은 유명해진 감초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영화 대사 중 나오는 ‘서른 마흔 다섯 살’이 된 뒤 다시 보니, ‘옛날에는 주인공 짱구가 보였지만 지금은 아버지가 보인다’는 재관람 후기가 공감을 부른다. 제목 ‘바람’은 다시 한 번 돌아가고 싶은 바람(wish)이다. 넷플릭스 측은 “‘바람’이 많은 관심 받고 있는데, 특별히 선정한 영화는 아니다”라며 “영화사·배급사와 계약에 따라 오래된 작품들이 들어올 때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