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에서 한국이 코로나를 풍토병(엔데믹) 수준으로 낮추는 선도 국가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일 “오미크론 유행이 정점을 지나고 있다”며 한 말이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이보다 앞선 지난 1일 “우리나라가 ‘엔데믹(Endemic·풍토병이 된 감염병)’으로 전환하는 세계 첫 번째 국가가 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져본다”고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도 “이제 코로나가 엔데믹이 된다더라”는 희망 섞인 말들이 돌았다. 모두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한국이 코로나가 엔데믹으로 전환되는 첫 번째 국가가 될 수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앞다퉈 벌어진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5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

대통령과 총리가 ‘엔데믹 전환’을 걸고 ‘K방역’을 자찬하고 나서니 이쯤 되면 “엔데믹이 좋은 건가”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유수의 외신마저 ‘세계 최초 엔데믹 국가’로 우리나라를 꼽았다고 하니 더 그런 느낌이 든다. 하지만 WSJ 기사를 읽다 보면 좀 의구심이 든다. “이게 칭찬인가, 비판인가?” 엄격하기로 세계 제일이었던 ‘K방역’이 폭발적인 전파력을 가진 오미크론 앞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는 뉘앙스가 더 강하기 때문이다.

실제 해당 WSJ 기사에는 대통령과 총리가 자찬하는 ‘K방역’에 대한 호평보다는 한국이 깐깐한 방역 조치를 해제하게 된 사연이 더 구구절절 소개된다. 해당 기사는 “한국은 더 이상 오미크론 유행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 한국의 인구 대비 확진자 수는 미국·영국의 정점 대비 3배”라고 했다.

물론 ‘한국의 코로나 치명률이 미국·영국보다 훨씬 낮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이 낮은 치명률은 압도적으로 높은 한국인의 백신 접종률 덕택에 가능한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고령층의 높은 3차 접종률이 위중증 환자 발생과 사망을 크게 낮췄다는 것이다. 이건 정부의 방역 성과가 아니라 우리 국민의 협조와 희생 덕분이라는 얘기다. 뉴질랜드, 싱가포르도 우리처럼 백신 접종률이 높아 사망자가 적은 국가로 소개된다. 덕분에 한국 정부는 어쩔 수 없이 엔데믹으로 가고 있다는 게 WSJ 기사의 요지다. 이걸 K방역의 성과로 차용한다면 그야말로 ‘아전인수’다.

‘엔데믹’의 사전적 뜻은 풍토병 또는 감염병의 주기적이고 예측 가능한 유행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엔데믹’의 ‘엔(En-)’을 ‘끝(end)’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En-’은 ‘~속에 함께’란 뜻을 갖는 그리스어 접두사라고 한다. ‘코로나와 싸우길 포기하고, 어쩔 수 없이 코로나 속에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엔데믹은 희망도 절망도 아닌, 우리 앞에 놓인 엄혹한 현실이다. 대표적인 엔데믹인 말라리아는 2020년 한 해에만 전 세계 60만명, 결핵은 150만명의 목숨을 빼앗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