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미국 버지니아주(州) 페어팩스 카운티에 있는 조지메이슨대 이산수학 강의실에 백발 노신사가 나타났다. 스물 남짓한 학부생들 사이에 노트를 펴고 앉아 강의를 들은 그는 돈 바이어(Don Beyer·73). 직업은 미국 연방 하원의원이다. 민주당 소속으로 알렉산드리아, 알링턴 등이 포함된 버지니아 8선거구를 대표하는 바이어 의원은 인공지능(AI) 머신러닝 석사 학위를 받기 위해 작년 가을부터 이 대학에서 학업을 시작했다. 1972년 윌리엄스 칼리지 경제학과를 졸업한 지 50년 만에 학교로 돌아간 셈으로, 현재는 필수 기초 수학·과학 학점을 이수 중이다.
27일(현지 시각)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바이어 의원은 학업을 재개한 이유에 대해 “인공지능과 머신러닝에는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들을 해결할 가능성이 있다”며 담담히 말했다. “15개월 전쯤 지역 대학인 조지메이슨대에 들렀다가 혁신적인 머신러닝 실험실을 보고 ‘나도 강의를 들을 수 있냐’고 물었다. 학교 측이 ‘아마도’라고 답하더라. 그래서 등록했다”고 했다.
버지니아주 부주지사와 주스위스 미국 대사를 거쳐 2015년부터 하원의원을 지내고 있는 그는 AI가 등장하기 전부터 첨단 과학·기술에 관심이 많았다. 핵융합반응을 발전에 이용하는 융합 에너지의 가능성에 주목해 ‘융합 에너지 의원 모임’을 만들었고, AI 의원 모임에도 참여하고 있다. 그는 “의원으로서 세계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두 가지에 관심이 있다. 하나는 융합 에너지고 다른 하나가 AI와 머신러닝”이라며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핵융합을 연구하는) 플라스마 물리학자가 될 수는 없겠지만 머신러닝이라면 나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바이어 의원은 의회 일정이 끝나고 보통 밤 9시쯤 귀가한다. 그때부터 12시까지 온라인 강의를 듣거나 숙제를 한다. 아침 기상 시간도 7시에서 6시로 앞당겼다. 그는 “하원 정보위원장인 공화당의 마이크 터너 의원도 의정 활동 중 조지타운대에서 다시 (도시 경제 개발) 공부를 시작해 박사 학위를 받았다”며 “나 혼자만 이러는 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의원들이 공부하는 이유에 대해 바이어 의원은 “우리가 미래를 바꾸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며 “이런 (첨단) 기술들에 대해 의원과 보좌진을 더 많이 교육할수록 (미래를) 더 잘 준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미 의회 내에) AI에 대한 논란이 많다. 우선 ‘챗GPT나 바드, 빙 같은 언어모델(챗봇)이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란 논란이 있고 이는 ‘독재 정부가 이 모든 개인 정보를 수집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란 틱톡과 관련된 논란으로도 연결된다”고 말했다. “우리(미 의회)는 (AI와 관련해) 공공의 안전과 개인 정보를 보호할 수 있는 합리적인 ‘가드레일’을 설치하고 싶어한다. 어떻게 혁신과 창의성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적절히 규제할 것인가를 알아내는 과정에 있다.”
그는 “소셜미디어를 실리콘밸리에만 맡겨뒀더니 허위 정보의 홍수 같은 부정적 면이 많이 생겼다. 우리가 충분히 대비하지 못했던 것”이라며 “우리를 보호하려면 이윤을 우선시하는 실리콘밸리 사람들만을 믿고 있을 수는 없다. 그들에게는 정책적 관점이 없다”고도 했다. 이어 “선친께서는 94세까지, 조모님은 98세까지 사셨다. 내가 배운 것을 유용하게 사용해 5~10년쯤 더 세상에 기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정말 보람 있는 일일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