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고를 졸업하고 열아홉 나이에 은행에 취업했다. 20년간 몸담은 은행을 떠나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로 옮긴 뒤 9년을 계약직으로 일하고 정규직이 됐다. 묵묵히 맡은 일을 하다보니 어느새 인사부장이 되고 이사, 부사장으로 한 단계씩 올라섰다. 올해는 캠코 창사 이래 첫 내부 출신 사장이 됐다. 고졸 학력에, 외부에서 왔고, 계약직이었다는 3가지 장벽을 넘어선 비결은 10대 소년 시절부터 닳도록 읽은 난중일기에 담겨 있다.
초등학생 시절 아버지가 임진왜란 관련 역사책을 읽으시던 걸 보고 이순신 장군에 호기심이 생겼다. 중학생 때 처음 접한 난중일기에는 인생의 지혜가 담겨 있었다. 그때부터 이순신 장군의 100만분의 1이라도 닮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난중일기를 몇번이나 읽었는지 셈을 할 수 없을 정도다. 화장실에 두고 읽기도 했다.
◇ 중학생때부터 화장실에도 읽어… 고졸·계약직·외부출신이지만 사장 올라 “장군의 리더십, 현대에도 모범”
성인이 된 이후에는 난중일기에 담겨 있는 조직 운영의 노하우가 눈에 들어왔다. 이순신 장군은 앞장 서는 리더십을 실천했다. 장군이니까 뒤에서 폼잡을 수 있었지만 명량대첩에서 보듯 솔선수범해서 제일 먼저 앞으로 나갔다. 리더가 죽을 각오로 선두에서 싸우니까 이길 수 있었다. 나는 캠코에서 오랫동안 영업맨이었다. 부실채권을 인수하면서 발로 뛰어다녔다. 동료나 부하 직원에게 떠넘기지 않고 맨 앞에서 현장을 누볐다. 금융회사 여신관리부 직원들 중에 나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난중일기에는 이순신 장군의 전략가다운 면모가 나타난다. 전투를 할 때마다 정탐선을 보내거나 척후병을 먼저 보낸다. 상황을 치밀하게 파악하는 데 중점을 둔다. 리더가 정확한 판단을 하려면 냉철한 상황 파악이 우선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순신 장군은 신상필벌을 중시했다. 탈영병을 참수한 뒤 효수까지 하는 결단력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공과를 나누는 데 마음이 넓었다. 승전고를 울리면 조정에 장계를 올릴 때 누가 왜군 몇 명을 죽였는지를 자세하게 기록한다. 공과를 정확하게 따져 상을 나눠준다. 리더가 말로만 “잘해줄께”라고 한다고 해서 부하들이 따르지 않는다는 걸 배웠다.
이순신 장군은 왜구들 머리를 베면 명나라군에 “너희 공으로 하라”며 넘겨주기도 했다. 다른 사람에게 인심을 넉넉하게 썼다. 명나라 병사들에게 술도 자주 사줬다. 요즘 개념으로 ‘영업의 귀재’였던 셈이다. 이순신 장군을 따라 나는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지는 않았는지, 다른 사람의 공을 내 것으로 하지는 않았는지를 늘 돌이켜봤다.
캠코에 와서 계약직으로 있을 때 사실 불안감을 느끼기도 했다. 부실채권을 인수하러 다니는 건 편한 업무가 아니었다. 어려운 순간과 맞딱뜨릴 때마다 인생의 나침반인 난중일기를 읽고 또 읽으며 지혜를 구했다. 명문대 출신이 즐비한 금융권과 공공기관에서 소위 ‘스펙’이 좋지 않은 편인 나에게 우호적인 사람이 하나 둘 늘었다.
44년간 직장 생활을 하며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을 추구해왔다. 남은 재임 기간 동안 이순신 장군이 부하들을 아낀 것처럼 직원들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