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싱 국가대표 오상욱(왼쪽)이 25일 아시안게임 남자 사브르 결승에서 대표팀 선배 구본길을 누르고 금메달을 확정한 뒤 악수를 청하고 있다. 지난 아시안게임 결승에선 구본길이 이긴 바 있다. /김동환 기자

5년 만에 또다시 결승에서 맞붙은 선후배. 이번 결과는 반대였다. 25일 중국 항저우 전자대학 체육관에서 끝난 항저우 아시안게임 펜싱 남자 사브르 개인전 결승. 한국 대표 선수끼리 마지막 승부를 펼쳤다. 후배 오상욱(27)이 선배 구본길(34)을 15대7로 누르고 금메달을 땄다. 지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결승에선 구본길이 오상욱을 15대14로 제압하고 우승했는데 설욕전이 펼쳐진 셈이다. 오상욱은 “이기면 마냥 좋을 것 같았는데 5년 전에 본길이형이 나를 이기고 왜 울었는지 알 것 같다”고 말했다.

다시 결승전 무대에서 만난 둘은 통상 펜싱 선수들이 포인트를 따내면 포효하며 상대를 기 죽이던 것과 달리 조용히 칼끝만 번뜩였다. 초반 7-7로 팽팽히 맞서던 경기는 오상욱이 이후 공격을 주도하며 15대7로 끝났다. 마스크를 벗은 두 사람은 악수를 나눈 뒤 서로를 따뜻하게 안았다.

이날 구본길이 정상에 섰다면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개인 단일 종목 4연패(連覇)라는 위업을 달성할 수 있었지만, 후배에게 가로막혔다. 구본길은 “대기록이 눈앞에 있었지만, 막상 상욱이와 결승을 하니까 내려놓게 됐다. 후회 없는 경기를 해서 후련하다”며 “상욱이는 파리 올림픽도 문제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192㎝ 큰 키를 자랑하는 오상욱은 한국 사브르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스타다. 사브르는 머리와 양팔을 포함한 상체만 공격할 수 있으며, 찌르기와 베기가 모두 가능한 종목. 오상욱은 긴 팔(리치 205㎝)과 다리를 활용해 깊게 찌르고 베는 기술로 2018-2019시즌부터 두 시즌 연속 랭킹 1위에 오르며 일찌감치 세계 최강자로 군림했다. 서양 선수들은 세계 무대를 휩쓰는 이 젊은 검객을 ‘괴물(monster)’이라고 불렀다. 그는 2021년 3월 코로나에 걸려 한 달 이상 격리하며 7㎏ 이상이 빠지며 우려를 자아냈지만, 4개월 뒤 도쿄올림픽에서 대표팀 에이스로 활약하며 김정환·구본길·김준호와 단체전 금메달을 합작, ‘어펜저스(어벤저스+펜싱)’란 별명도 얻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곤 시련도 있었다. 작년 11월 김정환과 연습 경기 도중 실수로 그의 발을 밟아 오른쪽 발목이 꺾이며 인대가 파열됐다. 중학교 1학년 때 펜싱을 시작한 이후로 가장 큰 부상이었지만, 그는 재충전을 위한 시간이 왔다고 생각했다.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회복한 후엔 혼자 일본에 열흘간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렇게 피스트(Piste·경기대)로 돌아온 오상욱은 그만큼 더 강해져 있었다.

그는 지난 4월 서울 그랑프리 대회에서 세계 랭킹 1위 산드로 바자제(30)를 결승에서 꺾으며 이름값을 되찾았다. 아시안게임을 대비해 매일 오전 6시 달리기를 시작으로 하루 8~9시간 구슬땀을 흘렸고, 그렇게 원하던 개인전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는 “본길이형처럼 아시안게임 3회 연속 금메달에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열린 경기에선 홍세나(25)가 여자 펜싱 플뢰레 개인전에서 동메달을 따냈다. 세계 랭킹 47위 홍세나의 주요 국제대회 첫 입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