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오픈 테니스 대회 주경기장인 필립 샤트리에 코트엔 황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했다고 전해지는 격언이 적혀 있다. 선수들은 벤치에 앉아 쉴 때마다 정면에 있는 이 문구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
“가장 끈기 있는 자에게 승리를(Victory belongs to the most tenacious).”
남자 단식 결승전이 열린 12일(한국 시각) 노바크 조코비치(36·세르비아·세계 1위)가 ‘GOAT(the Greatest Of All Time·역대 최고)’를 향한 유례 없는 끈기를 드러내며 4대 메이저 대회 최다 우승 대기록을 달성했다. 23번째 메이저 대회(호주오픈, 프랑스오픈, 윔블던, US오픈) 정상에 오른 것. 이전까지 ‘라이벌’ 라파엘 나달(37·스페인·136위)과 나눠 갖고 있던 기존 기록(22회)을 갈아치웠다.
조코비치는 이날 혈투 끝에 열한 살 어린 카스페르 루드(25·노르웨이·4위)를 세트스코어 3대0(7-6<7-1> 6-3 7-5)으로 눌렀다. 1세트에서 조코비치는 강력한 스핀이 가미된 스트로크를 앞세우고 능숙한 드롭샷을 구사하는 루드에게 여러 차례 당했다. 공을 받아내다 미끄러져 나뒹굴기도 했다. 그러나 노장의 관록은 타이브레이크 끝에 1세트를 가져가도록 이끌었다. 그는 2세트부턴 루드의 경기 운영 방식을 읽어낸 듯 날아다녔다. 그리고 3세트에선 승부처인 11번째 게임에서 내리 4득점을 꽂아 넣어 6-5로 앞서 나가더니 본인의 서브 게임까지 지켜내며 3시간 13분 접전에 마침표를 찍었다.
우승이 확정되자 그는 코트에 드러누워 감격을 표현했다. 루드와 포옹하며 덕담을 주고받은 뒤엔 한동안 코트에 주저앉아 흐느꼈다. 관중석으로 달려가 가족과 코치진 품에도 안겼다. 그리고 23번째 메이저 우승을 기념하는 의미로 숫자 ‘23′을 붙인 훈련 재킷을 입고 우승컵을 힘차게 들어 올렸다. 기립박수를 보내는 관중 사이로 축구 스타 킬리안 음바페(25·프랑스), ‘절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42·스웨덴), NFL(미 프로풋볼) ‘GOAT’ 쿼터백 톰 브래디(46·미국)도 보였다.
조코비치의 이번 우승으로 남자 테니스 ‘GOAT’를 둘러싼 논쟁은 종식되는 분위기다. 경쟁자 나달은 부상으로 올해 프랑스오픈에 불참했고 내년 은퇴를 시사했다. 반면 조코비치는 띠동갑 이상 차이 나는 ‘젊은 피’들을 연거푸 돌려세우고 있다. 3주 뒤에 열릴 윔블던에서도 그는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다.
역대 최장 기간(388주) 세계 1위, 통산 상금 수입 1위 등 전리품도 화려하다. 큰 부상이 없는 한 2~3년은 건재할 것으로 보인다. 경기 외적으로 잡음을 일으키는 건 옥의 티다. 그는 지난달 29일 대회 1회전을 마치고 “코소보는 세르비아의 심장이다. 폭력을 멈춰 달라”는 정치적 메시지를 전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코소보는 2008년 세르비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했지만, 세르비아는 분리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자국의 일부로 간주해 충돌이 이어지고 있다.
조코비치는 자신이 ‘GOAT’인지에 대한 질문에 “각자 시대와 환경에서 최선을 다한 선수들이 있었다”고 자세를 낮추면서도 “(선수 황혼기에 접어든) 이 시점에서 메이저 대회 우승은 내게 최우선 순위다. 여전히 최고의 경기력을 선보일 수 있어 기쁘다. 나는 나만의 역사를 만들고 있고, 아직도 최고가 되기 위한 영감을 얻는다. 20년 동안 이어온 커리어를 여기서 멈출 생각은 없다. 윔블던도 기대된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