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위기를 계기로 비대면 시대가 열렸다. 하지만 중요하고 은밀한 일은 얼굴을 보고 처리해야 안심한다. 은행 대출이 그렇다. 소액 신용 대출이 아니라면, 실무자의 서류 심사 뒤에 책임자가 고객을 만나 담보와 사업성을 직접 확인한다.
남북전쟁 이전 미국의 상업은행들은 주정부의 허가를 받고 설립되었기 때문에 다른 주에는 지점을 세울 수 없었다. 그렇다고 비대면으로 대출하기는 위험했다. 생각 끝에 제3자의 도움을 받았다. 신용 평가사가 제공하는 정보를 바탕으로 다른 주 기업이 발행한 채권을 매입한 것이다. 신용 평가사 덕분에 회사채가 잘 팔려서 대륙 횡단 철도를 건설할 때 전국에서 돈이 쉽게 모였다.
은행 대출에만 익숙했던 우리나라는 신용 평가가 무엇인지 잘 몰랐다. 1980년대에 이르러 자본시장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말을 듣고 반신반의하면서 신용 평가사를 세웠다. 그 무렵 한국산업은행이 해외에서 채권 발행을 시도했다. 정부가 원리금을 보증키로 하자 해외 투자자들이 국가 신용 등급을 요구했다. 무디스사 직원들이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를 찾아와 꼬치꼬치 캐물었다. 사무관들은 귀찮았지만, 그래도 내색하지 않았다. 그 덕에 1986년 11월 A2 등급을 받았다.
1997년 외환 위기가 터지자 국가 신용 등급이 투기 등급인 Ba1으로 주저앉았다. 이후 신용 등급 회복이 국가적 과제가 되었다. 부총리는 신용 평가사 직원들을 상전 모시듯 예우했다. 덕분에 신용 등급이 A3로 올라갔지만, 2003년 봄 북핵 위기가 불거졌다. 신용 등급 유지가 부정적이라는 전망에 온 국민이 식은땀을 흘렸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2012년 9월 일본을 제쳤다.
지금 한국의 국가 신용 등급은 AA(S&P), Aa2(무디스), AA-(피치)다. 일본보다 높고, 미국보다는 낮다. 지난달 피치사가 미국의 신용 등급을 AAA에서 AA+로 낮췄다. 국가 부채 때문이다. 개인이든 국가든 빚이 많으면 격이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