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남배우의 마약 투약 혐의 소식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가 4종류의 마약을 투약했다는 보도가 있은 뒤 SNS(소셜미디어)에는 그가 마약 복용 후 방송하거나 촬영한 것으로 의심되는 사진과 영상이 다수 올라왔다. 댓글엔 마약 복용은 잘못된 선택이라는 비난, 프로포폴을 계속 허용한 의료진에 대한 비판, 마약 사범에 관대한 우리 사회를 문제로 바라보는 의견이 섞여있다.
비슷한 시기 제주도에서 20대 여성이 운전하던 차가 다른 차량 6대를 들이받는 사고가 일어나 관련 운전자가 체포된 사건이 있었다. 사고 원인은 마약 성분의 식욕억제제 복용 후 환각 상태서 운전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사 댓글에서 ‘운동하기 싫어서 마약 먹었네’라는 내용을 보았다. 이 여성은 정말 운동하기 싫어서 마약을 먹었을까? 마른 몸에 대한 선망을 자극하는 이미지가 가득한 사회에서 식욕억제제를 복용한 이에게 이처럼 단순하고 납작한 잣대로 비난하는 게 정당한지 모르겠다. 물론 절대로 범법을 옹호하려는 게 아니다.
식욕억제제의 부작용은 우울증, 조현증, 환각을 넘어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게 되는 경우까지 알려져 있는데도 심각한 사회문제로 다루지 않고 있다. 그저 약을 먹는 개인을 ‘운동하기는 싫고 효과는 빠르게 보려는 이들’로 치부한다. 그러나 다이어트약 복용은 마약이란 사실을 알고도 투약하는 것과는 다르다. ‘다이어트약 마약’을 인터넷에 검색해 보면, 다양한 플랫폼에서 약을 구매한 뒤 돌연 경찰 출석 조사를 요구받아 당황해하는 글이 수도 없이 나온다. 쉽게 구입한 다이어트 보조제가 마약이었던 것이다.
다이어트 광고에는 ‘이것만 먹으면 살이 빠진다’고 환하게 웃는 연예인들이 있고, 유튜브를 보면 갈비뼈가 다 보일 정도로 마른 여자 아이돌의 모습이 가득하다. 자연스럽게 거울 앞에 서서 방금 본 아이돌의 몸과 나를 비교한다. ‘살을 빼라’는 문구 없이도 세상은 ‘마르고 예쁜 몸’이라는 환상을 판다. 연예인 이름을 딴 다이어트 식단이 횡행한다. 이를 따라 여성 청소년이 굶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이러한 흐름에서 프로아나(찬성을 뜻하는 ‘Pro’와 거식증을 뜻하는 ‘Anorexia’를 합성한 단어)의 유행은 너무나 자연스러워 보인다. ‘뼈말라’(뼈가 보일 정도로 마른 몸)를 지향하는 프로아나는 ‘먹토’(먹고 토하기), ‘씹뱉’(씹고 뱉기) 등을 통해 극단적으로 살을 뺀다. 이를 심각하게 살펴봐야 할 이유를 간단히 정리하자면 첫째, 국내 섭식장애 환자의 24%가 10대 청소년으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둘째, 정신질환 가운데 사망할 확률이 가장 높은 것은 거식증이며, 환자가 계속 늘고 있다. 셋째, 그들이 마약 성분의 식욕억제제를 섭취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살이 빠지니 석 달째 생리를 안 해서 기쁘다’는 10대 프로아나의 글을 봤던 것이 벌써 4년 전이었다. 그사이 세상은 얼마나 달라졌나. 이제는 폭식과 금식을 넘어 일명 ‘나비약’이라고 불리는 디에타민 식욕억제제를 SNS에서 사고파는 10대가 늘어났다. 디에타민 역시 마약류로 분류되어 16세 이상만 처방 후 복용이 가능한데도 어린 청소년들의 수요가 끊이질 않는다고 한다.
‘어쩌다 마약까지 했을까’. 마약 성분이 검출된 배우에게는 안타까운 질문을 하는 반면, 마약 성분의 다이어트 약을 먹은 여성에게는 ‘왜 이런 약을 먹었나’ 비난한다. 미(美)의 기준이 획일화된 지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서일까. 더 늦기 전에, 섭식장애와 다이어트약에 대한 고찰이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