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에서 기획예산처 장관과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변양균 전 장관은 “경기 단기 부양 조치와 함께 규제 개혁 작업을 본격화해야 한다”고 했다. 아무 권한도 없는 규제개혁위원회로 규제 개혁을 하는 시늉만 내지 말고, 예산권을 쥔 가칭 ‘규제혁신기획부’를 만들어 규제를 푸는 부처에만 예산을 주는 특단의 처방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픽=백형선

-추가경정예산 편성안을 마련하는 등 새 정부의 경제 정책이 본격화되고 있다.

“지금의 내수 상황을 고려하면 추경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추경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추경만 하면 된다’ ‘추경 먼저 하고 경제 구조 개혁은 나중에 하겠다’는 접근은 잘못됐다는 것이다. 거시 정책(통화·재정 정책)은 거시 정책대로 하되, 경제 구조의 틀을 바꾸는 구조 개혁을 동시에 해야 한다.”

-과거 정부들도 규제 개혁을 하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김영삼 정부 이후 모든 정부가 예외 없이 규제 개혁에 나섰지만 실패했던 까닭은 ‘규제개혁위원회’ 같은 허울뿐인 위원회 조직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위원회는 예산과 인사라는 핵심 권한이 없고, 타 부처에서 인력을 파견받아 일하기 때문에 규제 개혁에 진심일 수가 없다. 규제 개혁만 전문적으로 다루고 동시에 실권도 갖춘 부처가 필요하다.”

-어떤 부처가 그 역할을 맡아야 하나.

“새 정부가 기획재정부의 예산 기능을 분리하겠다고 했는데, 기왕에 예산 기능을 가져가는 부처를 신설한다면 예산 권한과 규제 개혁 기능을 합친 ‘국가혁신기획부’(가칭)를 만들어보면 좋을 것 같다. 예산 심사를 하면서 개혁 가능한 규제들을 매번 심의하고, 실제로 각 부처에 규제 개혁을 명령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 부처에서 계속 일할 공무원들도 선발해 자신들의 주 업무가 ‘규제 개혁’임을 주지시켜야 한다. 그렇게 하면 실컷 규제 개혁 하겠다고 했다가 원 부처로 돌아가서는 모른 체하는 문화를 없앨 수 있다.”

-규제 개혁 방향은.

“기업들이 새로운 혁신을 하고, 근로자가 자유롭게 일자리를 찾아 돌아다닐 수 있도록 정부가 틀을 만들어줘야 한다. 기업에는 토지·자본·노동·기술의 자유를 보장해줘야 한다. 그러면 기업들이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새로운 혁신을 가져오고 ‘창조적’인 경제 개혁이 가능해진다. 얼핏 들으면 어려운 말 같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간단한 문제다. 예를 들어 지방에 작은 수퍼마켓 하나를 만들려면 지금은 ‘창고 넓이나 높이는 얼마로 해야 하고, 부지는 어느 지역에 해야 한다’ 등등 지켜야 할 규제가 너무 많다. 정부가 이처럼 세세하지만 불필요한 규제를 포착해서 하나하나 풀어줘야 한다.”

-진보 정부가 규제 개혁 등 시장 친화적 정책을 추진하면 반발이 있었다.

“경제 정책은 묶음으로 봐야 한다. 모든 경제 정책을 판단할 때 한 단면만 떼어 놓고 이념적으로 공격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서민층의 기본 수요를 충족하기 위한 정책들이 마련된 상태에서 시장경제 원칙을 지키기 위한 규제 개혁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2020년 코로나 확산기에 문재인 정부에 했던 조언이 기억난다. 당시 기업이나 근로자나 마찬가지로 경기가 위축되니 고통이 컸다. 나는 ‘제일 먼저 실업 급여 지급 기간을 대폭 늘리자. 그리고 기업들이 인력을 감축할 수 있도록 허용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면 근로자들은 갑자기 밥줄이 끊길 우려를 덜면서 잠시 일자리 시장에서 물러나 있을 수 있고, 기업들은 일단 인건비를 아껴서 위기에 대응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문 정부는 실업 급여 지급 기간 연장과 인력 감축 허용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금의 위기 상황에서도 처방은 마찬가지라고 본다. 기본적인 삶의 수준이 보장된 상태에서 시장경제 원칙에 따라 규제를 없애고 기업 활동을 보장하면 경제가 성장할 수 있다.”

-참고할 만한 과거 정부의 정책은.

“참여정부 당시인 2006년 발표했던 ‘비전2030’(성장과 복지의 선순환을 내세운 국가 장기 발전 전략)을 생각해볼 수 있다. 여기에는 근로장려세제 도입과 만 4세 무상 보육 등 국민의 기본적인 수요를 충족해 주면서도 동시에 서비스 산업 경쟁력 강화, 임금 피크제 확대, 기업 규제 완화 등 기업 경쟁력 강화 방안들도 담겨 있었다. 당시 정부는 경제 정책에서 불필요한 이념적 고집을 부리지 않았고 필요한 정책들을 추진했다.”

☞변양균

1949년 경남 통영 출생. 노무현 정부에서 기획예산처 장관과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을 역임하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비전2030’ 등 노무현 정부의 주요 정책들에 깊이 관여했다. 특히 정책실장으로 일할 때는 문재인 당시 비서실장과 더불어 청와대 ‘투톱 체제’를 이루기도 했다. 이후 창업 투자 회사인 스마일게이트 인베스트먼트 회장으로 일했고, 윤석열 정부에서는 대통령실 경제 고문으로 임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