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현지 시각) 우크라니아 키이우 외곽 도시인 부차에서 한 할머니가 러시아군을 격퇴하고 도시를 탈환한 자국군 병사를 끌어안으며 반기고 있다./A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를 둘러싼 북부 전선에서 러시아군이 퇴각하고, 동부와 남부 전선에서 우크라이나군 반격이 본격화하면서 민간인을 상대로 러시아군 점령지에서 벌어진 잔혹 행위의 실상이 드러나고 있다. 어린이 등 민간인을 ‘인간 방패’로 쓰고, 처형한 정황도 확인되고 있다. 또 미국과 독일이 전차와 장갑차 등 지상전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추가 제공하기로 하면서 서방의 무기 지원은 단계를 더 높여가는 모양새다.

우크라이나 총참모부는 2일 “우크라이나군이 키이우 북부의 러시아군을 밀어내면서 이르핀과 부차, 호스토멜, 이반키우 등 키이우 주변 도시와 마을 30개 이상을 탈환했다”며 “키이우 동북쪽 150㎞에 있는 체르니히우에 대한 포위도 풀렸다”고 밝혔다. 총참모부 관계자는 “일부 러시아군은 벨라루스와 러시아 국경 너머로 후퇴했다”고 말했다. 러시아군은 키이우 외곽 안토노프 공항에서도 철수, 우크라이나군이 30여 일 만에 공항을 탈환했다. 러시아군은 병력 보충과 보급을 마친 뒤 다시 전선에 투입될 전망이다. 올렉시 아레스토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고문은 “당분간 동부 돈바스와 남부 마리우폴 인근 전선에서 격렬한 전투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러시아가 동부 돈바스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면서 이 지역 요충지 이지움을 함락하는 데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또 “우크라이나 중부 크레멘추크의 정유 시설과 이곳 동쪽 폴타바 및 드니프로의 군 비행장에 정밀 장거리 미사일 공격을 했다”고 밝혔다. 공격 타깃이 된 정유 시설은 우크라이나 동부와 중부 지역에 휘발유와 디젤 연료를 공급하는 곳으로, 전날 러시아 본토의 연료 저장고가 공격받은 데 대한 보복으로 해석됐다.

우크라이나군이 탈환환 지역

러시아군이 퇴각 과정에서 저지른 만행도 드러났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러시아군이 물러간 키이우 북서쪽 부차와 호스토멜, 이르핀 등에서 민간인 복장의 시신 수백 구가 발견됐다”며 “두 손이 등 뒤로 결박되고, 눈이 천으로 가려진 시신도 있었다”고 밝혔다. 러시아군에 의한 집단 처형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다. 키이우 외곽 20㎞ 지점 고속도로에서는 옷이 벗겨진 여성 등 10여 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러시아군이 탱크와 군용차를 겨냥한 우크라이나군 공격을 막으려 어린이들을 차량 앞에 태워 ‘인간 방패’로 썼다는 주장도 나왔다”고 전했다.

미국과 동맹국은 무기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2일 “미국 정부가 동맹국들이 보유한 구(舊)소련제 탱크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를 보유한 서방 동맹국은 체코와 폴란드, 루마니아, 불가리아, 슬로바키아 등이다. 한국도 1990년대 중·후반 일명 ‘불곰 사업’으로 T-80U 전차 30여 대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과 동맹국들이 우크라이나에 탱크 등 기갑 전력을 지원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총 몇 대의 탱크가 제공될 수 있을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독일은 옛 동독군이 보유했던 ‘Pbv-501′ 장갑차 58대를 우크라이나에 공급하는 것을 허가했다. NYT는 “우크라이나군이 지원받은 기갑 장비를 동부 돈바스 전선에 투입해 러시아군을 압박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번 전쟁이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국방부는 이와 별개로 “3억달러(약 3660억원) 규모의 군수품을 우크라이나에 추가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정찰용 ‘푸마’ 경량 무인기, 미사일처럼 목표를 공격해 파괴하는 스위치 블레이드 드론, 야간 열 영상 관측 장치, 전술 보안 통신 시스템 등이 포함됐다.

한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1일 화상으로 6차 평화 협상을 시작했다고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보좌관이 밝혔다. 양측은 지난달 29일 터키에서 대면 방식으로 진행한 5차 협상에서 안보 보장을 전제로 우크라이나의 중립국 지위와 비핵화를 논의하는 방안에 합의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