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 개혁은 대부분 국가에서 피할 수 없는 과제다. 연금 제도를 도입했을 때보다 출산율은 줄고 평균수명은 훨씬 늘어났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 학자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저출생·고령화가 급격하게 진행 중인 우리나라의 경우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연금 개혁은 어렵고 인기 없는 작업이기도 하다. 1000조원이 넘는 거대한 기금에 관한 문제인 데다 ‘더 내고 덜 받는’ 방향일 수밖에 없어서 좋아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금 개혁은 ‘코끼리 옮기기’라는 비유가 있다. 연금과 코끼리는 덩치가 매우 크고 다루기 힘들기 때문에 원하는 장소로 안전하게 옮기는 일은 굉장히 어렵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지금 국회가 그 다루기 힘들다는 코끼리 옮기기의 막판 작업을 하고 있다. 국회 연금개혁특위 산하 공론화위가 다수안으로 채택한 1안은 미래 세대가 감당하기 힘든 안이다(1안: 국민연금 내는 돈을 현행 소득의 9%에서 13%로 올리고, 받는 돈은 현행 40%에서 50%로 늘리는 안. 2안: 내는 돈을 12%로 올리고, 받는 돈은 현행 유지하는 안). 기금 고갈 시점을 7년 늦춘다고 하지만 받는 돈이 늘어나면서 2093년까지 누적 적자가 기존 대비 702조원 추가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복지부도 이 안에 대해 국회에 “현재보다 재정을 더 악화시켜 연금 개혁 목적에 부합하지 않다”고 보고했다. 미래 세대의 부담을 늘리는 개편은 안 하니만 못할 것이다.
과거 사례를 보면 1안이 얼마나 문제 있는 방안인지 짐작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3년 복지부가 국회에 제출한 연금 개혁안은 내는 돈 15.85%, 받는 돈 50%였다. 1안과 받는 돈은 같지만 내는 돈은 3%포인트 가까이 높은 것이다. 21년 전보다 지금 저출생·고령화 상황이 훨씬 나빠졌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번 공론화위 논의에서도 연금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진짜 ‘재정 안정안’은 내는 돈 15%, 받는 돈 40%였다. 받는 돈은 지금과 같이 하면서 내는 돈은 15% 정도로는 올려야 국민연금 재정이 안정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 방안은 이번 공론화위 최종 투표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다.
우리 국민연금의 내는 돈은 1998년 소득의 9%로 올린 이후 26년째 손을 대지 못했다. 그래서 OECD 평균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연금 개혁이 늦어질수록 미래 세대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빠른 시일 내에 소폭이라도 인상을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 국회로 넘기지 말고 21대 국회에서 처리하는 것이 화급한 문제인 것이다. 내는 돈과 받는 돈을 1안과 2안의 평균 등 적절한 선에서 절충하기만 해도 받는 돈을 높이면서 미래 세대의 부담도 훨씬 덜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 의견이다.
그런데 생뚱맞게도 국회 연금특위 위원장·간사단과 개혁안 논의에 참여해 온 전문가들이 8일부터 5박 7일 일정으로 영국과 스웨덴을 방문하기로 했다가 7일 막판 협상 결렬로 일정을 취소했다. 외유 일정 취소는 잘된 것이다. 두 나라가 연금 선진국이긴 하지만 이제 와서 현지에 가본들 무슨 도움이 되겠나. 하지만 협상은 계속해 이번 국회에서 연금 개혁을 마무리해야 한다. 아직 3주 이상이 남아 있는데 특위 활동 종료를 선언할 이유가 없다. 막판 협상에서 여야가 주장한 수치 차이도 그렇게 크지 않다. 이번 국회에서 내는 돈과 받는 돈 조정을 마무리한 뒤, 다음 국회에서는 국민연금의 기초연금과의 관계, 출산율과 경제 상황에 따른 자동 조절 장치 도입 등 2차 ‘코끼리 옮기기’ 작업에 시동을 거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