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호 기자

흔히 자식을 잃은 부모의 고통은 ‘몸의 일부가 떨어져 나간 것’으로 비유된다. 반대는 어떨까. 2019년 ‘엄마’를 잃은 시인 김혜순(67)은 이렇게 표현했다. “산산이 부서지는 고통이었다.”

그는 최근 열네 번째 시집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문학과지성사)’를 펴냈다. 80여 편의 시를 엄마의 투병과 죽음에 대한 비탄, 코로나 팬데믹이란 전 인류적 재난에 대한 비탄, 죽음 바깥 세계란 주제로 3부에 나눠 엮었다. 28일 서울 마포구에서 기자들을 만난 시인은 “표제작 단어 ‘달’이 ‘딸’과 어원이 같다”고 했다. 자신의 외동딸은 “엄마, 과학적으론 틀린 제목이야 했다”며 웃었지만, “(엄마가 죽으면) 딸은 누굴 돌까 생각했다”고 했다. 특히 “코로나 같은 전염병과 전쟁으로 각종 장례를 치르고 모든 지구인이 달로 옮겨가 지구를 쳐다보는 장면을 상상했다”고 했다.

시인은 전부터 ‘죽음’을 깊이 고민해왔다. 2019년 펴낸 13번째 시집 ‘날개 환상통’은 ‘아빠’를 잃은 경험을 담은 것. 같은 해 그의 이름을 해외에 알린 캐나다 그리핀 시문학상 수상작 표제도 ‘죽음의 자서전’이었다. 시인은 이 상을 타기 직전 모친상을 당했다.

올해로 등단 43년차인 시인은 당시 엄마의 죽음이 “세상 모든 사람이 지닌 슬픔의 무대를 느끼게 했다”고 회상했다. 그 직전까진 엄마와 함께 구급차를 타고 호스피스 병동을 전전했고, 직후엔 충격으로 시인이 직접 세 번이나 응급실에 갔다고 했다. 이어서 코로나가 찾아왔고, 시인은 한 달 전 자신이 직접 코로나 확진자가 됐었다.

그래서 시인은 “단란한 산책을 즐기는 가족을 보면 저기 슬픈 ‘작별의 공동체’가 걸어가는구나 싶다”고 했다. 언젠가는 헤어질 공동체. “이 작별의 공동체들이 보내는 시간과 나날은 죽음 이후 어디로 갈까”란 고민이 들었다고 한다. 죽음의 고통을 ‘산산이 부서진다’로 느낀 시인은 그 장소를 ‘사막’이라 부르기로 했다. “사람을 태우고 난 재의 자리이기도 하고, 우리의 경험이 바스라져간 곳”이란 뜻으로, 시인은 “(시를 쓰는 동안 늘) 그곳에 엄마와 나를 데려가봤다”고 했다. 이번 시집의 3부 ‘달은 누굴 돌지’에 엮은 시들이 바로 그 사막을 탐구하고, 헤맨 기록이다.

그만큼 시인은 이번 시집이 “‘개인 슬픔의 치유’보단 ‘비탄의 연대’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 “기도하는 것보단 비탄하는 게 시인의 역할”이란 것이다. 특히 시인에게 죽음은 “삶 속에서 무한히 겪어나가고, 무한히 물리쳐야 하는 것”이다. “엄마는 이제 저의 과거형이지만, 돌아가심으로써 미래가 됐어요. 나에게 삶을 준 줄 알았는데, 죽음도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