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3일 제주 4·3 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4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에서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의 온전한 명예 회복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4·3 사건은 남로당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반대해서 일으킨 무장 폭동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민간인 희생자가 다수 발생한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다. 보수 정당 출신 대통령이나 당선인의 4·3 추념식 참석은 처음이다. 윤 당선인은 희생자 유가족들에게 허리를 90도로 굽혀 인사하며 ‘국가의 책임’을 강조했다.
윤 당선인은 이날 “4·3의 아픔을 치유하고 상흔을 돌보는 것은 바로 우리의 책임이며, 화해와 상생, 그리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대한민국의 몫”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생존 희생자들의 아픔과 힘든 시간을 이겨내 온 유가족들의 삶과 아픔도 국가가 책임 있게 어루만질 것”이라고 약속했다.
윤 당선인은 새 정부에서도 희생자들을 위한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윤 당선인은 “무고한 희생자들을 국민과 함께 따뜻하게 보듬고 아픔을 나누는 일은 자유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당연한 의무”라며 “이곳 제주 4·3 평화공원이 담고 있는 평화와 인권의 가치가 널리 퍼져나가 세계와 만날 수 있도록 새 정부에서도 노력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과거는 우리가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다는 믿음이 비극에서 평화로 나아간 4·3 역사의 힘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윤 당선인은 이날 가슴에 4·3 희생자들을 상징하는 동백꽃 배지를 달았다. 윤 당선인은 “우리는 4·3의 아픈 역사와 한 분, 한 분의 무고한 희생을 기억하고 있다”며 “억울하단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소중한 이들을 잃은 통한을 그리움으로 견뎌온 제주도민과 제주의 역사 앞에 숙연해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희생자들 영전에 애도를 표하고 유가족들을 위로했다. 윤 당선인은 “지난 2월 이곳을 찾았을 때 눈보라가 쳤다. 오늘 보니 붉은 동백꽃과 많은 아름다운 꽃들이 만개했다. 완연한 봄이 온 것”이라며 “여러분 한 분, 한 분의 가슴에도 따뜻한 봄이 피어나도록 더 노력하겠다”고 했다.
윤 당선인은 후보 시절인 지난 2월 5일 제주에서 유세를 하며 당선되면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다.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윤 당선인이 오늘 국무총리를 지명하는 회견이 있는데도 제주도에 간 것은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윤 당선인은 이날 대통령 전용기인 공군 2호기를 이용해 서울과 제주를 오갔다.
이날 추념식엔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도 참석했다. 이 대표는 제주 4·3 평화공원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민의힘이 4·3에 있어 전향된 행보를 시작한 이후 한 번도 성사되지 않았던 보수 정당 출신 대통령 당선인의 방문이기 때문에 (유가족 보상 등이) 앞으로 급물살을 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선 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행사에 참석해 윤 당선인, 이준석 대표와 인사를 나눴다. 박 위원장은 “(4·3 진상 규명과 명예 회복은) 대통령의 결정에 따라서 된 것이기 때문에 민주주의 국가로서 후퇴될 수 없는 부분”이라고 했다. 법무장관의 검찰총장에 대한 수사지휘권 폐지를 비롯한 윤 당선인의 핵심 공약에 반대 입장을 표명한 박범계 법무장관도 행사에 참석해 윤 당선인과 조우했지만 대화는 나누지 않았다. 두 사람이 만난 건 검찰 고위 간부 인사 논의를 했던 지난해 2월 이후 1년 2개월 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