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기(뒤쪽) 원로목사가 이영훈 담임목사를 포옹하는 모습./여의도순복음교회 제공

“이 목사, 자네가 됐어. 축하하네. 어서 한국으로 돌아오게.”

2006년 11월 12일 미국 LA에 있던 이영훈 목사는 서울의 조용기 목사로부터 국제전화를 받았다. 조용기 목사의 후임 담임목사를 선출하는 특별 임시당회가 열린 날이었다. 당시 나성순복음교회 담임이었던 이영훈 목사는 933표 중 435표를 얻어 세 명의 후보 중 가장 많은 지지를 얻어 여의도순복음교회 2대 담임목사로 선출됐다. 조 목사는 이날 당회 후 귀가길 차 안에서 이 목사에게 전화를 걸어 축하 인사를 건넨 것.

당시 조용기 목사의 후임 문제는 개신교계를 넘어 한국 사회의 주목거리였다. 당시엔 대형 교회의 리더십 교체 과정에서 갈등이 벌어지고 부자(父子) 간 담임목사 승계를 두고도 비판이 제기되고 있었다. 세계 최대 개신교회인 여의도순복음교회의 리더십 교체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세상의 우려와 달리 여의도순복음교회는 담임목사직 승계 과정에서 모범을 보였다. 임시당회를 통해 ‘담임목사 서리’로 임명된 이영훈 목사는 2년의 서리 기간을 모범적으로 보낸 후 2008년 5월 담임목사로 취임했다. 취임 예배 때 이 목사는 “평생 조 목사님을 아버님처럼 모시고, 부목사같이 목회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조 목사가 소천할 때까지 이 다짐을 지켰다. 조용기 목사는 담임목사 시절부터 새벽 4시 반이면 출근했다. 이영훈 목사는 항상 1시간 먼저 교회에 출근했다가 조 목사가 도착할 때 자동차 앞에서 인사를 드렸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만년에 파킨슨병을 겪은 조 목사가 외부 인사와 식사할 때 이 목사는 항상 옆자리에서 조 목사 식사 시중을 드느라 정작 본인은 식사를 못 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 목사가 담임목사로 취임한 이후 조 목사는 크고 작은 일에 “담임목사인 자네가 다 알아서 하게”라며 힘을 실어줬다. 원로목사와 담임목사의 이 같은 신뢰 관계는 초대형 교회가 겪기 쉬운 리더십 혼란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았다. 개신교계에서는 ‘조 목사가 씨앗을 뿌리고 키우고 수확하기 시작했다면, 이 목사는 그 씨앗이 더욱 풍성하게 자랄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는 평가가 있다. 이영훈 목사의 ‘시스템 구축’은 해외 사역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조 목사는 지구 120바퀴 거리를 누비며 뜨거운 성령의 씨앗을 뿌렸다. 이영훈 목사는 제3세계 국가들을 방문할 때에는 국제구호개발 NGO ‘굿피플’과 동행한다. 현지의 수요를 파악해 학교, 유치원, 병원 등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2014년 케냐 투르카나에 세워진 ‘임연심굿피플미션스쿨’이 대표적 예. 여의도순복음교회 아프리카 1호 선교사로 파송된 임연심 선교사(1951~2012)는 ‘케냐의 이태석’으로 불린다. 29년간 현지에서 활동하며 유치원을 설립해 어린이 교육에 헌신하다 숨졌다. 교회는 “임 선교사의 꿈을 이어야 한다”는 이영훈 목사의 의지에 따라 중고등학교를 세운 데 그치지 않고 지원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 목사는 요즘 “한 번으로 끝내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강조하고 있다. ‘낮아지고, 섬기고, 희생하는’ 교회의 역할은 1회성이 아닌 지속성, 현재에서 끝나지 않고 ‘다음 세대’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