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훈

시상식은 재미있다. 상에 연연하지 않는 척 연연하는 후보들 표정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도우미가 서너 명은 필요해 보이는 무거운 드레스 자락을 끌고 가벼운 표정을 짓는 후보들 모습도 재미있다. 한국 시상식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 중 하나는 걸그룹 공연을 보며 근엄한 척하는 배우들 표정이었다. 인터넷에서 하도 지적을 받은 나머지 요즘은 다들 애써 즐기는 척을 한다. 더 재미있다.

가장 재미있는 건 수상 소감이다. 독자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나에게도 기억에 남는 몇몇 소감이 있다. 2005년 청룡영화제 황정민의 소감은 종종 회자된다. 그가 “스태프가 차린 밥상에서 나는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된다”고 말한 순간은 감동적이었다. 오스카를 거머쥔 윤여정이 “아들들아 이게 엄마가 열심히 일한 결과란다”라고 말한 순간도 잊을 수 없다. 솔직하고 재치 있는 소감은 역사에 남는다. “OO미용실 원장님께 감사드린다”는 구시대의 소감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얼마 전 한 미국 가수가 ‘혁신가상’이라는 걸 받으며 한 소감이 인터넷을 들썩였다. 다들 “자신감을 불어넣는 소감”이라며 칭찬했다. 이름은 밝히지 않겠다. 팬덤이 거대해서 두려운 탓이다. 하여튼 그는 말했다. “옳은 느낌이 드는 옳은 선택을 하세요. 언젠가는 사람들이 당신을 혁신적이라고 할 겁니다.”

나는 삐딱해지고 말았다. 서른 초반 수퍼스타가 된 그가 상을 받은 이유는 재능을 타고나고 운이 좋았던 덕이다. 운이 더럽게 좋았던 덕이다. 옳은 느낌이 드는 옳은 선택을 한다고 모두가 그가 될 수는 없다. 언젠가부터 셀러브리티들은 수상 소감으로 자꾸 교훈을 주려고 한다. 서른 언저리 배우가 연기의 의미에 대해 장광설을 펼치는 걸 듣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도 없을 것이다.

나도 안다. 여러분도 노력했다. 다만 여러분만큼 노력한 사람도 있다. 여러분의 시상식용 헤어 스타일을 만든 미용실 원장님이다. 그러니 근사한 교훈을 주려 애쓰기보다는 그냥 “OO미용실 원장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해달라. 적어도 그건 봄맞이 새 스타일을 시도하고 싶은 많은 사람에게 실용적인 교훈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