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27일 발표한 ‘서남권 대개조 구상’의 핵심은 규제 철폐다. 발전을 가로막아온 용도 지역이나 고도 제한 등 규제를 풀어 새로운 모습의 ‘첨단 융·복합 신도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특히 영등포구와 구로구, 금천구, 강서구, 양천구, 관악구, 동작구 등 서남부 지역 7개 구(區)의 숙원 사업들이 대거 포함됐다.
서울시는 우선 도심에 흩어져 있는 준공업 지역 규제를 풀기로 했다. 준공업 지역은 도심 공업 지역으로, 공장을 짓는 게 원칙이지만 일부 주택 신축도 가능하다. 다만 용적률을 최고 250%로 묶어 고층 아파트 단지 개발은 한계가 있었다. 현재 서남권 준공업 지역은 제조업 중심의 낡은 공장들이 문을 닫거나, 지방으로 떠나 슬럼화된 상태다. 철공소, 카센터, 소규모 공장 등이 지역 개발을 막고 있는 모습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날 “오늘 발표는 서울 준공업 지역에 대한 해체 선언”이라며 “서남권을 직(職)·주(住)·락(樂)이 어우러진 첨단 신도시로 다시 만들겠다”고 했다.
서울시는 준공업 지역에도 주거와 문화, 상업 등 시설을 지을 수 있게 하고 용적률 제한도 최고 400%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그러면 철공소, 카센터 자리에 40층 높이의 고층 빌딩도 올라갈 수 있게 된다. 총 넓이 16㎢에 이르는 이 지역이 개발되면, 여의도 5.5배 크기의 신도시가 생기는 것이다.
영등포 일부 준공업 지역은 용도를 아예 상업 지역으로 바꿀 계획이다. 오 시장은 “요즘은 공장도 첨단으로 바뀌고 땅도 다양한 기능을 넣어 입체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라고 했다.
영국 런던은 석탄 창고였던 콜드롭스야드의 토지 규제를 풀어 새로운 IT 허브로 만들었다. 여기엔 구글 런던 사옥 등이 입주해 있다.
서남권 일부 부지는 싱가포르의 ‘화이트 사이트’처럼 토지 이용 규제를 아예 없앤다. ‘산업혁신구역’이라고 이름 붙여 이른바 ‘규제 프리존’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싱가포르는 간척 사업으로 조성한 마리나베이 등을 ‘화이트 사이트’로 지정해 용적률이 1300%에 이르는 초고밀도 신도시로 개발했다.
서울시는 또 금천구 공군 부대 부지를 ‘공간혁신구역’으로 지정해 글로벌 첨단 기업과 호텔 등이 포함된 복합 단지로 개발한다. 금천구 공군 부대를 포함해 서남권의 13개 부지를 ‘화이트 사이트’ 대상으로 검토 중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올해 조례 개정 등 규제 철폐 작업을 시작해 2026년쯤부터 설계 등 본격적인 사업 착수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인로 일대의 낡은 물류 단지인 구로기계공구상가와 구로중앙유통단지는 동대문구 장안동 동부화물터미널처럼 첨단 물류에 여가, 주거 기능을 덧붙여 복합 개발한다. 영세 공장만 가득한 구로구 서울온수일반산업단지는 첨단 제조업 산업 단지로 개발한다. 그간 20m 고도 제한, 개별 신축 금지 등 여러 규제에 막혀 낙후된 곳이다.
김포공항은 이름을 서울김포공항으로 바꾸고 주변에 도심 공항 산업 클러스터를 조성한다. 강서구 공항동 일대는 모빌리티, 첨단 의료 기업 등을 유치하고, 김포공항에는 미래 교통수단인 UAM(도심항공교통) 복합환승센터를 만든다. 관악구 낙성대역 일대는 미국의 실리콘밸리처럼 산·학·연을 연계한 벤처밸리를 조성한다.
오세훈 시장은 “서남권에 이어 서북권, 동북권, 동남권 등 권역별로 서울의 ‘대개조 계획’을 연달아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화이트 사이트(White Site)
도시 개발을 할 때 주거·상업·공업 등 용도 지역에 따른 규제를 적용받지 않는 이른바 ‘규제 프리존’이다. 싱가포르에서 처음 도입된 도시계획 정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