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하버드대를 비롯한 미국 주요 대학에서 국제 학생 수용을 제한하는 조치를 내렸다. 국적 정보 미제공이나 특정 국가 출신이라는 이유로 학생들이 강의실에 들어서지도 못한 채 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실제로 벌어졌다. 이는 개인에게는 치명적인 불이익일 뿐 아니라, 세계 학문 생태계 전체에도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이러한 사태를 단순히 한 정권의 일시적 조치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우리가 직면한 본질적인 질문은 더욱 깊다. 학문은 어디까지 열려 있어야 하는가. 대학은 어떤 경계를 허물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리고 정치는 어디까지 학문에 개입할 수 있는가.
지식은 국경을 묻지 않는다. 질문은 여권을 요구하지 않는다. 과학과 학문의 진보는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충돌하고 협력하며 융합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수많은 성취는 한 국가의 산물이 아니라, 전 세계 지성의 자유로운 교류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대학은 단순한 물리적 교육 공간을 넘어, 열린 지성의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특정 국가의 연구자를 배제하거나 교류를 차단하는 것은 개별 국가의 손실에 그치지 않고, 인류 전체의 진보를 지연시킨다. 과학기술 발전과 사회문제 해결에 있어 국가 간 협력이 필수인 시대, 닫힌 대학은 곧 닫힌 미래를 의미한다.
대학의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외국인에게 문호를 개방하라는 차원을 넘어, 질문할 자유, 실패를 실험할 여유, 다름을 존중하는 관용까지 포괄한다. 연구실의 문은 질문하는 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하며, 강의실은 출신과 언어, 사상의 차이보다 진리를 향한 열망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외부의 간섭 없이 자율적으로 작동할 때 비로소 대학은 공공성과 창의성을 갖출 수 있다. ‘스스로 찾아오는 대학’, 이것이 열린 대학의 힘이며 우리가 지켜야 할 본질이다.
주목할 점은, 미국이 문을 걸어 잠그는 사이 세계 각국의 대학들이 그 틈을 파고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홍콩의 주요 대학들은 하버드 유학생들을 위한 간소화된 편입 절차와 장학금, 연구 연속성 보장 제도를 신속히 마련했다. 일본 역시 도쿄대를 비롯한 대학들이 하버드 유학생 수용을 위한 특별 지원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정부 차원에서 학업 중단 유학생 지원을 각 대학에 요청했다. 영국과 유럽의 여러 대학들도 하버드발 유학생과 연구자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글로벌 대학들은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이고 신속한 조치로 우수 인재 유치 경쟁에 나서고 있다.
국내에서도 고려대학교가 하버드 등 미국 대학에서 학업이 중단된 유학생과 연구자를 위한 특별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편입학, 교환학생, 계절학기, 특별 초빙 등 다양한 경로로 학업과 연구의 연속성을 지원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는 국내 대학 중 가장 빠른 대응 사례로, 우리 대학들이 글로벌 인재 유치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선언과 구호에 머물러 있다. 제도는 더디고, 행정은 복잡하며, 연구자 유치를 위한 실질적 인프라는 여전히 부족하다. 학문은 속도를 기다려주지 않는데, 우리는 그 속도에 늘 한참 뒤처져 있다. 질문할 자유, 연구의 연속성, 국경 없는 지식의 흐름은 이미 앞서가는 국가들이 실천하고 있는 기준선이 되었다.
이제는 진지하게 자문해야 한다. 우리는 연구자들이 스스로 찾아오고 싶은 나라, 연구가 끊이지 않는 대학을 만들 준비가 되어 있는가.
다행히 최근 정부도 세계 연구 인재 유치를 위한 전략을 발표하며, 외국인 박사후연구원 유치 등 지원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대학들도 점차 글로벌 인재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러나 이제 중요한 것은 선언이 아니라 실천이다. 제도가 실제 연구자의 선택과 이동, 협력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실질적 기반을 다지는 일이 남아 있다.
지금까지 느렸다면 이제는 빨라져야 한다. 속도는 곧 권력이 되고, 개방은 가능성이 된다. 연구자가 실제로 찾아오는 대학, 연구가 멈추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실천이야말로 우리가 준비해야 할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