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 안드레스 월드센트럴키친(WCK) 대표가 2020년 9월 미국 워싱턴 DC의 한 소방서에서 열린 9·11 테러 19주기 기념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스페인 이민자 출신 스타 셰프인 그는 전 세계 재난 지역의 굶주린 사람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민간 구호단체 WCK를 이끌고 있다. 지난 1일 가자지구에서 구호 활동을 하던 WCK 직원 7명이 이스라엘군 오폭으로 숨지면서 국제사회가 분노하는 가운데, 안드레스의 존재가 조명받고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구호단체 월드센트럴키친(WCK)의 직원 7명이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 활동을 하다 이스라엘 오폭으로 숨진 가운데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가 3일 “이들의 죽음이 금방 잊혀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WCK 대표이자 ‘스타 셰프’인 호세 안드레스(55)를 조명했다. 이번 일이 벌어진 직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사석에서 크게 분노했고, 이스라엘은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이례적으로 특별 성명까지 발표해가며 오폭을 인정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그 배경에 “워싱턴 파워 서클 한가운데 있고, 진보 진영 거물들로부터 두루 존경을 받는 성인(saint) 같은 요리사 안드레스가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공습으로 WCK 직원들이 숨진 이튿날인 2일 바이든은 안드레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백악관은 바이든이 안드레스를 ‘친구’라 부르며 그간의 기여를 강조했고, “이번 일에 대한 큰 비탄함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이후 별도의 성명도 발표해 “바이든이 격분했고 비통해했다” “구호 요원 보호를 위한 충분한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고 이스라엘을 작심 비판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 이후 바이든이 비영리단체에 직접 전화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액시오스는 “이 유명 셰프가 얼마나 강력한 목소리를 갖고 있는지를 보여준 것”이라며 “안드레스가 말하면 워싱턴이 귀를 기울인다”고 했다.

스페인계인 안드레스는 뉴욕·라스베이거스 등에 20여 개 레스토랑을 소유한 성공한 요리사다. 2016년 세계적 미식 안내서인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 2개를 받았는데, 요리를 통한 자선 사업으로 더 유명하다. 2010년 지진으로 쑥대밭이 된 아이티에 봉사활동을 다녀온 뒤 WCK를 설립했다. 허리케인이 휩쓸고 지나간 푸에르토리코, 쓰나미 피해를 당한 인도네시아 등 전 세계 재난 현장을 누비며 음식을 제공했다. 2년 전엔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현지에서 하루에 18만끼를 만들었다. “특별한 사람을 위한 요리보다 많은 사람을 배부르게 하는 요리가 좋다”는 게 안드레스의 지론이다.

안드레스의 이런 활동은 미국 엘리트들의 음식에 관한 인식을 크게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뜻에 공감한 영부인 질 바이든 여사,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부부,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등 진보 진영의 주요 인사들이 WCK의 자선 행사에 참여해 힘을 보탰다.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은 2019년 안드레스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했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국가 인문학 훈장’을 수여했다. 2016년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가 멕시코인을 비하하자 ‘트럼프 인터내셔널 호텔’에 레스토랑을 열기로 했던 계획을 철회한 일화가 유명하다. 바이든은 취임 후 안드레스를 대통령 자문기구인 ‘스포츠·피트니스·영양 자문위원회’ 공동 의장으로 임명했다.

안드레스는 3일 뉴욕타임스(NYT)에 기고한 글에서 “이스라엘은 시민들에게 갈 음식·의약품을 막고, 구호 요원들을 죽이는 것보다는 더 나은 나라”라며 “평화로 향하는 긴 여정을 오늘이라도 당장 시작하라”고 했다. 자신의 X(옛 트위터) 계정에는 숨진 직원의 생전 활동 모습이 담긴 영상을 공유하며 “이 일을 하지 않아서 당신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사람처럼 웃고 있을 텐데 너무 미안하다”고 말해 110만 팔로어들의 심금을 울렸다. 안드레스는 로이터에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무기 지원을 지적하며 “바이든 정부가 전쟁을 끝내기 위해 네타냐후를 더 압박해야 한다”고 했다. 바이든은 곧 네타냐후와 통화를 갖고 오폭 사건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가에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안드레스가 바이든의 친(親)이스라엘 일변도 정책에 얼마나 변화를 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