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벽을 가진 헤르만 헤세는 비행기에서 이 술을 마셨다
헤르만 헤세는 나신으로 절벽을 올랐다던가.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나는 기벽이 세상을 그나마 덜 지루하게 만든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생각난 김에 기벽을 사전에서 찾았더니 재미있는 예문이 나왔다. “그에게서 매력을 느꼈다면 그것은 그의 타고난 천진성과 기상천외의 기벽 때문이었다.” 기상천외까지는 아니지만, 최근에 들었던 기벽 중에 이런 게 있었다. 그는 어디에서나 블러디 메리를 마신다고 했다. 집에서도, 술집에서도, 비행기에서도...
2023.03.04(토)
|한은형 소설가
[백영옥의 말과 글] [293] 여기에서 듣기
심리 상담을 하는 지인에게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뭐라고 말해줘요?”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중간에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잘 들어줘요”라는 게 그의 답변이었다. 누군가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에서부터 ‘위로’와 ‘공감’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상담을 하면 답을 얻어야 한다는 일반인들의 생각과는 결이 다른 이야기였다. 한두번의 상담으로 해답을 얻는 ‘매직’은 현실에서는 찾기 힘들다. 대부분의 답은 이미 내담자 자신이 ...
2023.03.04(토)
|백영옥 소설가
[장유정의 음악 정류장] [70] 삼일절의 노래
1920년 3월 1일 중국 상하이 징안쓰루(靜安寺路) 올림픽대극장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최로 제1회 삼일절 기념식이 열렸다. 일본영사관의 간섭으로 점차 그 규모가 작아지긴 했지만 일제강점기 내내 삼일절은 상하이 교민들에게 크리스마스나 설날보다도 기쁜 날이었다. 당시 기념식의 사진들과 관련자들의 증언을 종합해서 삼일절 행사의 전반적인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독립만세’라 적힌 휘장이 무대 위 벽면에 드리워져 있고 그 양옆으로...
2023.03.02(목)
|장유정 단국대 정책경영대학원 원장·대중음악사학자
[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176]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미국의 영화배우이자 작가인 패니 플래그(Fannie Flagg)의 소설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Fried Green Tomatoes at the Whistle Stop Cafe)’는 1987년 발간 직후 36주 동안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었다. 그리고 1991년 영화로도 세계적 히트를 쳤다. 원래 소설의 배경은 앨라배마주의 아이언데일(Irondale) 마을이지만, 영화 제작진은 조지아주의 줄리엣(Juliette)을 로...
2023.03.02(목)
|박진배 뉴욕 FIT 교수·마이애미대 명예석좌교수
[윤희영의 News English] 건강에 가장 좋은 잠자는 자세는?
새벽까지 몸을 뒤척이며(toss and turn until the wee hours) 잠을 설치는(sleep fitfully) 수면 장애로 고생하는(suffer from sleep disorder) 이가 적지 않다. 그런데 잠자는 자세를 조금만 바꾸면, 혈액순환을 향상시키고(improve your circulation), 요통을 완화하면서 코골이도 방지해(prevent snoring) 숙면을 취할(have a goodnight...
2023.03.02(목)
|윤희영 편집국 에디터
[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03] 아이가 없는 세상
먼저 어린이 놀이터가 철거되었다. 그네는 단단히 줄로 묶여 고정되었고, 미끄럼틀과 정글짐은 새로 페인트칠을 하지 않은 채 방치되었다. 그러다 종내는 없어졌다. 학교도 문을 닫은 지 오래되었는데, 판자로 막아버리거나 성인 교육 센터로 쓰고 있다. 오디오 테이프와 레코드로만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영화나 TV 프로그램에서만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못 견디게 괴로워 못 보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마약을 하듯 아...
2023.03.01(수)
|김규나 소설가
[차현진의 돈과 세상] [112] 전염병의 경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발원에 관한 세계보건기구(WHO)의 조사가 끝내 실패했다. 중국의 협조 거부 때문이다. 이제 진실은 알 길이 없다. 중국이 생물학 무기로 개발했던 바이러스가 유출되었다느니, 인구 폭발 억제를 위한 거대한 계획이었다느니 하는 음모론만 남는다. 인구 감소에 관한 한 흑사병에 비할 만한 재앙이 없다. 흑사병은 여러 세기에 걸쳐 유럽 인구 1억명 이상을 사망케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급격한 인구 감소는 세상의 질...
2023.03.01(수)
|차현진 예금보험공사 이사
[윤대현의 마음속 세상 풍경] [145] 마음 독립 만세
‘핵인싸 독립운동가’란 제목의 한 블로거의 글을 접했다.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우당 이회영’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평전을 읽다 보니 자유에 대한 열망을 간직하고 미래를 내다보며 독립운동을 전개한 그의 삶이 요즘 말로 시대를 앞서간 핵인싸’란 이야기였다. 문득 ‘우당과 동지들이 남긴 절명시(絶命詩)’의 한 부분이 떠올랐다, ‘우리는 찬사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보답을 원하지 않는다’, ‘나의 마지막 기억 속에 기쁘게 웃으리...
2023.02.28(화)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윤희영의 News English] 한국인으로 성형·개명한 태국 마약왕
지난 24일 태국 수도 방콕에서 ‘잘생긴 한국 남성’이 마약 밀매 혐의로(on charges of drug trafficking) 구속됐다. 언뜻 보기에(at first appearance) 영락없는 20대 한국 젊은이였다. 이름은 ‘정지민’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한국인이 아니었다. 성형수술을 받아(undergo plastic surgery) ‘잘생긴 한국 남성’으로 가장한(disguise himself as a ‘hand...
2023.02.28(화)
|윤희영 편집국 에디터
사막 은광촌을 카지노·컨벤션 도시로… 3명의 유대인 '잭팟'
우리는 일자리가 감소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로봇 등 산업 자동화와 비약적으로 발전 중인 인공지능, 자율주행 등이 인간의 일자리를 빠르게 빼앗아 갈 전망이다. 이에 대처할 고용 창출 계수가 높은 서비스산업 특히 관광산업이 주목받고 있다. 최근 팬데믹이 잦아들면서 관광이 재개되고 있다. 관광산업은 천혜의 환경 또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문화유산이 있어야 꽃을 피울 수 있는 건 아니다. 사막 위에 건설된 라스베이거스나 습지 위에 ...
2023.02.28(화)
|홍익희 전 세종대 교수
[최영미의 어떤 시][109] 봄은 고양이로다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香氣(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生氣(생기)가 뛰놀아라. -이장희(1900~1929) 봄의 향기를 고양이를 통해 생생하게 보여준 시, 1920년대에도 이장희처럼 이미지로만 시를 쓴 시인이 있었다. 이 시에서 내가 제일 좋...
2023.02.27(월)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
[조용헌 살롱][1386] AI와 신기(神氣)
신기(神氣)가 무엇인가는 노벨상 수상자들도 아직까지 규명하지 못한 문제이다. ‘신기’를 과학적으로 설명해 주는 연구 결과는 언제 나오는가. 이것에 대하여 과학적 해명이 아직까지 없다면 필자가 그동안까지 축적한 경험적 차원의 설명이라도 하는 수밖에 없다. 입 다물고 있을 수만은 없다. AI와 신기의 분기점은 텍스트라고 본다. 텍스트가 있는 것은 AI의 학습이 가능하다. 그러나 텍스트가 없는 분야, 텍스트 밖의 영역은 AI가 잡아...
2023.02.27(월)
|조용헌 동양학자
[백영옥의 말과 글] [292] 변치 않고, 고여 있는 풍경
얼마 전 일본 여행 중 책가방 무게로 힘들어하는 저학년 초등학생을 보았다. ‘란도셀 오픈런’ 기사를 읽다가 일본은 참 변하지 않는 나라구나 싶었다. 란도셀은 일본 초등학생들의 국민 가방으로 1970년대에는 우리나라 초등학생도 이 가방을 메고 다녔다. 비싼 가격에 한눈에 봐도 두꺼운 가죽으로 만든 가방이기 때문에 어깨 통증을 호소하는 아이가 많은데도 왜 저 가방을 수십 년째 고집할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일본 총리가 나서 ‘팩스...
2023.02.25(토)
|백영옥 소설가
[윤희영의 News English] 대형 마트에 창문이 없는 이유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 정문(front entrance)은 화려한 유리문으로 돼 있다. 그런데 막상 안으로 들어가면, 자연광이 거의 사라진다(all but disappear). 특히 식품관은 사방 벽에 창문이 있는 경우가 드물다(rarely have windows along walls). 어떻게 된 일일까(What gives)? 건축적 특징에 관심을 두지(pay attention to the architectural featur...
2023.02.23(목)
|윤희영 편집국 에디터
[장유정의 음악 정류장] [69] 슬픔을 달래는 슬픈 노래들
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 유명한 타히티섬은 높은 자살률로 종종 거론된다. 자살률이 높은 것은 슬픔을 느끼는데 이를 표현할 단어가 없다 보니 감정을 해소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비감, 비애, 비참, 비탄, 애수 등 슬픔을 표현할 다양한 단어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 다행인가 싶기도 하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순서는 달라도 우리의 종착지가 죽음이라는 것을 상기하면, 어쩌면 우리는 모두 슬픔으로 가는 길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2023.02.23(목)
|장유정 단국대 정책경영대학원 원장·대중음악사학자
[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175] 항공사 기내 안전비디오
항공법은 비행기 이륙 전에 기내 안전 안내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예전에는 승무원이 직접 시범을 보이기도 했지만 요즈음은 대부분 비디오로 대체되었다. 그 내용은 천편일률적으로 똑같다. 비행기를 자주 타는 사람들은 수십, 수백 번 시청한 지루한 영상이다. 그 시간 동안은 전자기기도 사용할 수 없고, 영화 상영도 중단된다. 안전벨트 매고 꼼짝없이 앉아서 영상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시간이다. 수백 명 승객의 5분을 모두 합하면 그...
2023.02.23(목)
|박진배 뉴욕 FIT 교수, 마이애미대학교 명예석좌교수
이재명의 치밀한 두뇌, 담대하지 못한 심장[김창균 칼럼]
2021년 10월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은 대장동 의혹으로 막판 표심이 출렁였다. 초·중반엔 이재명 후보 독주였는데 마지막 날 투표에선 이낙연 후보가 62% 대 28%로 두 배 이상 앞섰다. 합산 결과 이재명 후보 득표율이 과반 경계선이었다. 중도 사퇴한 후보들의 표를 무효 처리하면 50.29%로 이재명 후보 확정, 포함시키면 49.3%로 이낙연 후보와 결선투표였다. 그 무렵 정치부장 출신 언론인들끼리 모임이 있었다. 결선투표...
2023.02.23(목)
|김창균 논설주간
[차현진의 돈과 세상] [111] 도광양회
과학자 갈릴레이는 학문에서만 천재가 아니었다. 처세술에서도 천재였다. 그는 자기가 개발한 군사용 나침반을 이탈리아 도시국가 곳곳에 뿌렸다. 두둑한 후원금을 기대한 것이다. 그런데 그 첨단 군수물자를 받은 군주들은 돈이 아니라 근사한 선물로 보답했다. 계획이 빗나갔다. 갈릴레이는 좀 더 확실한 방법을 찾았다. 1610년 자기가 만든 망원경으로 목성의 위성 네 개를 발견하자 그것으로 단단히 한몫 잡기로 했다. 목성의 위성이 지구보...
2023.02.22(수)
|차현진 예금보험공사 이사
[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02] 국회의원은 국민보다 더 평등한가?
“이젠 눈이 보이지 않는군.” 클로버가 말했다. “젊었을 때도 난 저기 씌어 있는 글들을 읽지 못했어. 그런데 저 벽이 좀 달라진 것 같지 않아? 일곱 계명이 그대로 있긴 있는 거니?” 벤자민은 이런 일에 끼어들지 않는다는 자신의 규칙을 이번 한번만은 깨기로 하고 벽에 씌어 있는 글들을 클로버에게 읽어주었다. 일곱 계명은 오간 데 없고 단 하나의 계명만이 거기 적혀 있었다. 그 계명은 이러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2023.02.22(수)
|김규나 소설가
난지도 80만평, '서울링' 말고 첨단 녹지 도시 세워야[한삼희의 환경칼럼]
오세훈 서울시장이 작년 8월 싱가포르 방문 후 ‘그레이트 선셋’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한강 르네상스의 ‘시즌 투’ 프로젝트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싱가포르의 관광 복합단지 마리나베이를 벤치마킹한 것이 많다. 물 위에 뜬 무대와 강변 객석, 레이저쇼가 벌어지는 수퍼트리와 비슷한 낙조(落照) 전망대, 발 아래 수면을 보면서 한강 위를 걷는 스카이워크, 물이 강으로 곧바로 떨어지는 것 같은 강변 인피니티풀 등이 그렇다. 마리나베이의...
2023.02.22(수)
|한삼희 환경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