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학부모 이지형(42·서울 중랑구)씨는 초등학교 5학년 아들에게 온 카톡 메시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메시지에는 야생동물인 '라쿤'을 판매하는 인터넷 사이트의 링크와 함께 "라쿤을 애완동물로 키우자"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가격은 한 마리에 180만 원. 이씨는 "야생동물을 인터넷으로 사고파는 것도 당황스럽지만, 아이들이 이런 걸 인터넷으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게 더 문제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인터넷을 통한 무분별한 야생동물 거래가 확산되고 있다. 라쿤, 미어캣, 북극여우, 스컹크 등 종류도 다양하다. 야생동물 특유의 사나운 습성이 남아 있는 동물들이지만, 귀여운 생김새 때문에 애완용으로 둔갑한 것이다. 심지어 사막여우, 아홀로틀 등 국제적 멸종위기종까지 암암리에 거래되고 있다.

일러스트=나소연

◇라쿤부터 사막여우까지 인터넷으로 밀거래

인터넷 포털 검색창에 '사막여우'를 입력할 경우 자동 완성 창에 '사막여우 분양'이란 단어가 가장 먼저 따라붙는다. '사막여우 분양'을 포털 창에 검색하면 해당 동물을 판매하는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소설 '어린왕자'에 등장하는 사막여우는 작고 귀여운 생김새로 널리 알려졌지만, CITES(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 2급에 지정된 보호종이다. CITES는 희귀 야생동물의 밀거래를 금지하는 규약으로, 국내에서는 CITES 1급 야생동물과 2급에 속한 포유류·조류를 개인이 키울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다.

개인이 국제적 멸종위기종을 수출·수입·반출 또는 반입하다 적발될 경우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의해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만 원 이상 3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기자가 직접 판매자에게 분양 문의를 해봤다. 사막여우 판매자는 "사막여우 거래는 불법이지만 직거래라서 누가 신고하지 않으면 괜찮다"면서 "혹시 아프더라도 치료받을 수 있는 동물병원을 소개해주겠다"고 말했다. 가격은 암수 한 쌍에 500만 원이었다.

멕시코 도롱뇽인 '아홀로틀'도 인터넷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다. 이 동물은 포켓몬스터의 인기 캐릭터 '우파루파'로 널리 알려졌다. 지난 15일 한 블로거는 '우파루파 분양합니다'라는 제목으로 크기 5㎝ 전후의 아홀로틀 개체를 판매하는 글을 올렸다. 이 판매자는 "(아홀로틀 매입금을) 입금하는 순으로 발송하며, 택배는 가급적 덜 추울 때 모아서 발송한다"고 안내했다. 가격은 개체 색깔에 따라 다양했고, 보통 4000원에서 1만 원 선에서 거래됐다. 아홀로틀 역시 CITES 2급으로 분류된 멸종위기종이다.

(사진 왼쪽부터) 사막여우·라쿤·아홀로틀

◇야생 습성은 사라지지 않아… 사람에게 질병 옮길 수도

야생동물을 일반 가정에서 키웠을 때 발생하는 문제는 치명적이다. 가장 큰 문제는 야생동물의 습성이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AWARE)의 이형주 대표는 "일부 판매상이 '개인이 인공 번식한 개체라서 반려동물처럼 키울 수 있다'고 말하지만 이건 거짓이다"며 "개체들이 어렸을 때는 온순해 보여도 성체가 되면 야생성이 살아나기 때문에 다루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또 실내에서는 야생동물이 나무에 오르거나 흙을 팔 수가 없어 쉽게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이런 동물들은 면역력이 떨어져 쉽게 질병에 걸리고, 사람이나 다른 반려동물에게 병을 옮길 수도 있다.

이 대표는 "대부분 귀여운 외모만 보고 입양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면 동물 유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실제 일본에서는 애완용으로 키우던 라쿤을 유기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해마다 2만5000마리 이상을 정부 차원에서 잡아들이고 있다. 이 때문에 네덜란드, 벨기에 등 유럽 국가를 비롯해 싱가포르, 미국 일부 주에서는 야생동물의 개인 소유를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

야생동물이 생활하기 적합한 야외 사육장을 마련하더라도 문제는 남아 있다. 바로 질병이나 상처를 입었을 경우 치료가 어렵다는 것. 이항 서울대 수의과대학 교수는 "수의과대학에서는 주로 개와 고양이 위주로 교육이 이뤄진다"면서 "가축의 경우에도 소·닭·돼지에 대해서는 질병과 치료법 연구가 많이 이뤄졌지만, 야생동물은 여전히 생소한 영역"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야생동물을 병원에 데려온다면 수의사 입장에서도 난처할 것"이라며 "야생동물은 전문 수의사를 갖춘 동물원에서 사육해야지 개인이 키울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