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시대 최초의 대장경(여러 불경을 하나로 모은 경전)은 현종 2년(1011년)에 만들기 시작한 '초조대장경'이에요. 그런데 이 초조대장경이 몽고의 침략으로 불타 버리자, 고종 23년∼38년(1236년∼1251년)에 걸쳐 새로운 대장경을 만들었어요. 이 대장경은 목판의 수가 8만여 개에 달하고 8만4000법문을 실었다고 해 '팔만대장경'이라고 불려요.

팔만대장경은 강화도 서문 밖의 대장경판고에 보관됐다가 강화도 선원사를 거쳐 조선 시대 태조 7년(1398년)에 해인사로 옮겨져 오늘날까지 보관되고 있어요. 대장경은 수천만 개의 글자가 하나같이 그 새김이 고르고,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요. 어떻게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잘 보존될 수 있었을까요?

팔만대장경판

경판에 쓰일 나무를 고르는 과정부터 과학적인 지식이 동원됐어요. 먼저 물관이 골고루 퍼져 있어 수분 함유율이 일정한 산벚나무를 베어 바닷물에 오랫동안 담근 뒤 다시 소금물에 삶아서 그늘에 서서히 말렸어요.

이런 과정을 거치면 나무의 진이 빠지고 수분의 분포가 고르게 되고, 나뭇결이 부드러워지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 조상은 알았던 거죠.

이렇게 제작된 목판에 경전을 새긴 후, 벌레가 갉아먹거나 물이 스며들어 경판이 썩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여러 차례 옻칠도 했어요.

장경판전의 모습

그다음에는 경판의 네 귀퉁이에 나무를 덧대어 뒤틀리지 않도록 했죠. 이러한 조상의 과학적인 지식과 세심한 정성 덕분에 경판이 오늘날까지 잘 전해지게 된 거예요.

이처럼 잘 만들어진 경판이라 하더라도 수백 년의 세월 동안 특수한 장치를 사용하지 않고도 잘 보관할 수 있었다는 것이 신비스럽죠? 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장경판전의 지리학적 위치와 건축 구조를 보면 답이 나와요.

장경판전은 가야산 중턱에서 서남서 방향을 바라보고 있어요. 산속에 있지만 남쪽이 열려 있어 마치 평지에 있는 것처럼 햇볕을 받는데 여름철에는 12시간, 봄철과 가을철에는 9시간, 겨울철에는 7시간 정도 햇볕을 받을 수 있죠.

특히 경판 보존의 가장 큰 적인 습기가 많은 동남풍과 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장경판전을 따라 옆으로 빠르게 흘러가도록 했어요. 반면 습기가 적은 산바람은 장경판전이 가로막아 천천히 지나가도록 설계했죠.

[어린이조선일보] [앗! 놀라운 전통과학] ―해인사 팔만대장경

또한 장경판전에는 아래와 위에 크기가 서로 다른 창이 있어요. 남향 창은 아래쪽 창이 위쪽 창보다 4배 정도 더 크고 북향 창은 위쪽 창이 아래쪽 창의 1.5배 정도 크답니다. 이렇게 하면 산 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남향의 넓은 아래쪽 창을 통해 들어와 일부는 경판 진열대를 지나 북쪽의 여러 작은 창으로, 나머지는 벽면을 타고 북쪽의 큰 창으로 빠져나가요.

창의 크기를 과학적으로 이용해 공기가 장경판전 안에 충분히 골고루 퍼진 후 밖으로 나가도록 하고, 동시에 공기가 들어오는 양과 나가는 양을 조절함으로써 알맞은 습도를 유지했어요.

또 남쪽으로 트인 넓은 아래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은 경판을 피한 채 바닥만 데우므로, 남쪽 바닥은 따뜻한 아랫목이 되고 북쪽 바닥은 찬 윗목이 되죠. 이로 인해 장경판전 안에서는 대류가 잘 일어나고, 온도와 습도가 고르게 돼 목판의 뒤틀림이나 변형을 막을 수 있었답니다.

글로연 '초등학생이 꼭 알아야 할 우리 민족과학' (이찬희 글, 허다경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