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가 없었던 옛날, 우리 조상은 음식과 곡물을 보관하는 곳에 숯을 넣어 두면 음식물이 잘 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조상이 사용했던 숯은 생활 여러 곳에서 다양한 능력을 발휘했는데, 지금까지 알려진 숯의 효과만도 엄청나게 많죠. 과연 숯에는 어떤 놀라운 과학이 숨겨져 있을까요?
'숯'은 숯가마에서 구워 낸 나무가 재로 변하기 전의 검은색 탄소 덩어리인데, '신선한 힘'이라는 뜻의 순 우리말이에요. 우리나라에서는 약 2600년 전부터 숯을 사용했다고 추측한답니다.
숯의 우수성을 알기 위해 경상남도 합천에 위치한 해인사로 떠나 볼까요?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해인사 장경판전에는 국보 제32호인 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 있어요. 그런데 이 대장경은 나무로 만든 목판이지만,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이후 800년에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신비로울 만큼 잘 보존되고 있답니다.
이처럼 팔만대장경이 잘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어요. 먼저 목판으로 쓴 나무는 소금물에 삶은 후 말리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한 다음 다시 그 나무판에 옻칠했어요. 또한 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데에는 장경판전의 과학적인 건축과 황토도 큰 역할을 했지만 장경판전 바닥에 묻힌 숯의 역할도 컸답니다.
우리 조상은 왜 숯을 장경판전 바닥에 깔았을까요? 목판을 보존하기 위해 꼭 필요한 조건은 알맞은 습도랍니다. 장경판전 안의 습도가 너무 높거나 낮으면 목판이 썩거나 갈라질 위험이 있어요. 이 습도를 조절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숯이라는 것을 조상은 알았던 거지요.
조사에 의하면 해인사 부근의 습도는 주변 지역보다 6~10% 정도 높음에도 장경판전 안의 평균 습도는 목판을 보관하기에 가장 알맞은 조건을 유지한다고 해요. 높은 온도에서 구운 숯은 수분이 거의 없지만, 숯에 나 있는 수많은 구멍이 습도를 조절하는 비밀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세한 구멍이 많은 스펀지가 물을 잘 흡수하듯이, 숯은 공기 중에 수분이 많으면 삼키고 적으면 다시 내뱉어 습도를 자연스럽게 조절해 주는 것이죠.
숯은 언뜻 보면 나무가 검게 탄 정도로만 보이지만, 전자현미경으로 확대해 보면 마이크로미터 정도의 아주 작은 구멍들이 엄청나게 많은 것을 관찰할 수 있어요. 이 작은 구멍들은 공기를 쉽게 통과시키지만, 오염 물질을 차단하기 때문에 공기 정화 효과가 매우 뛰어나요.
또 조상은 겨우내 띄운 메주로 이른 봄에 장을 담갔는데, 장을 담글 때는 옹기에 숯을 넣어요. '숯은 시커멓고 더러운데 왜 먹는 된장에 넣을까?' 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요. 신기하게도 곰팡이같이 덩치가 큰 미생물은 숯의 작은 구멍 속에 살기 어렵지만, 우리에게 유익한 미생물은 숯의 작은 구멍 속에서 살 수 있으며, 이 미생물들이 장을 잘 숙성시키는 역할을 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