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5년 9월 1일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의 분위기는 평소와 다르게 매우 어수선했습니다. 프랑스 역사상 유례없이 막강한 권력을 누린 태양왕 루이 14세(1638~1715)가 각종 병환에 시달리다가 이날 숨을 거뒀거든요.
귀족들에게는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루이 14세는 귀족들이 세력을 키우지 못하도록 감시하기 위해 이들을 궁전으로 불러들여 함께 지냈습니다. 귀족들은 감옥 같았던 궁을 벗어날 생각에 들떴어요.
파리의 저택으로 돌아온 귀족들은 그동안 억눌렸던 욕망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집과 외모를 화려하게 꾸몄죠. 이 시기 프랑스 상류층의 미술 양식을 '로코코(Rococo)'라고 불러요. 오늘은 우아한 매력이 있는 로코코의 세계로 떠나볼까요?
더 호화롭게, 더 섬세하게
귀족들은 기다렸다는 듯 사치스러운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우선 실내 장식에 공을 들였습니다. 값비싼 가구와 식기를 마구 사들였어요. 벽과 천장, 문 등도 황금으로 아름답게 꾸몄어요. 이때 유행한 것이 작고 울퉁불퉁한 조약돌(로카유·rocaille) 모양과 조개껍데기(코키유·coquille) 문양입니다. '로코코'라는 명칭도 이 두 단어를 조합해 만든 거예요.
또 귀족들은 자신을 '살아 있는 예술품'으로 여기고 치장에 공을 들였습니다. 여자들은 코르셋으로 허리를 잘록하게 만들고 풍성하게 부푼 치마를 입었죠. 장미꽃과 깃털, 리본으로 드레스와 모자를 장식했어요. 남자들도 옷에 은빛 자수와 레이스를 잔뜩 달았어요.
권위를 내세우며 웅장함을 강조한 17세기 바로크 양식과 달리, 18세기 로코코 양식에서는 섬세하고 경쾌한 분위기가 나타났답니다.
우아한 귀족의 일상을 그림에 담다
귀족들의 또 다른 관심사는 사랑과 축제였습니다. 대부분 시간을 연인과 사랑을 나누거나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보냈죠.
미술 작품에도 감미롭고 여유로운 분위기가 반영됐습니다. 미술가들은 값비싼 옷을 차려입은 귀족 남녀가 야외에서 대화하거나 춤추는 모습을 캔버스에 담았어요. 이 같은 로코코 회화의 주제를 '페트 갈랑트(f�tte galante)'라고 부릅니다. '우아한 연회'라는 뜻이에요.
장 앙투안 바토(1684~1721)의 '키테라 섬의 순례'는 로코코 미술의 특징을 고스란히 반영한 작품입니다. 키테라 섬은 사랑의 여신 비너스에게 바쳐진 전설의 섬이에요. 비너스의 도움을 받아 영원한 사랑을 이룰 수 있다는 신화 속 장소지요. 바토는 이 신비의 섬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연인들을 그렸어요. 장미꽃으로 장식된 비너스 여신상은 화면 오른쪽에서 이들을 내려다보고 있네요. 서로에게 다가가는 남녀의 몸짓 하나하나가 춤추듯 율동적입니다. 눈빛에는 사랑이 가득해요. 햇살은 비단 옷에 부딪혀 반짝입니다. 온화한 볕을 품은 숲과 너른 벌판은 관람객을 꿈 같은 세계로 안내해요.
도를 넘은 사치… 역사의 뒤안길로
파리에서 태동한 로코코 양식은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또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장식적이고 과장되게 변해갔어요.
이 시기 유럽에는 인간 이성의 힘을 믿는 '계몽주의'가 확산했습니다. 시민 의식이 점차 성장하면서 귀족들의 사치스럽고 방탕한 문화도 비판을 받기 시작했죠. 사회 분위기를 어지럽힌다고요. 결국 18세기 중반 이후, 로코코 미술은 쇠퇴의 길을 걷게 됐답니다.
감수 = 이화진 미술사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