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클래식 부흥기에는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등 불멸의 작곡가들이 있었다. 20세기에는 이들의 작품을 세상에 알리는 지휘 거장이 있다. 바로 레너드 번스타인(1918~1990)과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1989). 클래식 애호가들 사이에서 두 지휘자를 20세기 최고 지휘자로 꼽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번스타인, 지휘·작곡부터 방송까지 다재다능
올해는 레너드 번스타인 탄생 100주년이다. 번스타인을 기념하기 위해 전 세계 공연기획사들은 2017-2018 시즌에만 2000여 회의 공연을 열었다.
미국 매사추세츠에서 태어난 번스타인은 하버드대에서 작곡을 전공했다.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뉴욕 필하모닉 부지휘자로 일하던 1943년이다. 당시 '지휘계의 거성'으로 불리던 브루노 발터(1876~1962)가 독감으로 공연 날 앓아눕자 번스타인이 대체 지휘자로 무대에 올랐다. 리허설도 없이 급하게 오른 공연에서도 성공적으로 연주를 마쳤고, 이 공연은 그해 11월 14일 미 전역에서 방송됐다. 이를 계기로 청년 번스타인은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며 스타덤에 올랐다.
번스타인은 인기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West side story)' 음악도 작곡했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를 바탕으로 클래식·재즈·라틴음악 등을 결합한 이 작품은 발표와 동시에 돌풍을 일으켰다. 또 1958년부터 1972년까지 무려 15년간 TV 프로그램 '청소년 음악회'를 진행하며 클래식 교육자로도 활약했다.
그는 재능도 많고 욕심도 많았다. 번스타인이 생전에 남긴 말에는 자신감이 잔뜩 묻어난다.
"나는 지휘도 하고 싶고, 피아노도 치고 싶다. 교향곡도 쓰고 싶고 브로드웨이와 할리우드를 위한 음악도 쓰고 싶다. 책도 쓰고 시도 짓고 싶다. 내게는 그럴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89년, 그는 역사적인 공연을 갖는다. 그해 12월 23일 베를린에서 독일·프랑스·영국·미국·러시아 등 제2차 세계대전 참전국 출신의 단원으로 꾸린 연합 오케스트라가 번스타인의 지휘 아래 연주회를 열었다. 레퍼토리는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4악장인 '환희의 찬가'는 '자유의 찬가'로 가사를 바꿔 불렀다. 그리고 이듬해 8월 미국 보스턴에서 베토벤 교향곡 7번 공연을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났다.
◇"클래식, 집에서도 들을 수 있다"… 레코딩에 50년 쏟은 카라얀
20세기 음악 황제, 유럽의 음악 장관, 지휘의 대명사….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을 수식하는 말은 수없이 많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카라얀은 번스타인과 동시대에 활동했던 유럽의 대표 지휘자다. 20세기 클래식계는 미국의 번스타인과 유럽의 카라얀으로 양분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카라얀은 은발을 휘날리며 절제된 움직임만으로 지휘한다. 지휘대에서 절대 무릎을 굽히지 않았고, 양팔만 사용했다. 카라얀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지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베토벤 '합창'을 지휘할 때만은 눈을 감지 않았는데 합창단에도 악보를 절대 못 보게 하고 지휘자와의 시선 교환을 강조했다.
카라얀은 1938년 베를린 필하모닉의 사령탑에 오른 뒤 35년을 이끌었다. 종신 지휘자라는 문화도 카라얀의 산물이다. 특히 그는 공연을 녹음하거나 촬영해 기록으로 남기는 데 굉장히 애를 썼다. 그는 '레코딩은 죽은 음악'이라던 세간의 평가를 정면으로 반박하며, 1939년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서곡'부터 사망하기 3개월 전에 녹음한 브루크너 교향곡 제7번에 이르기까지 50년간 900여 장의 앨범을 제작했다. 앞으로는 공연장에 오지 않고 집에서도 편안하게 클래식을 즐길 수 있는 시대를 예감했던 것이다. 그의 예측은 정확히 들어맞았고, 총 2억 장에 이르는 클래식 앨범이 팔려나갔다. 지금도 카라얀 작품에는 매년 150만 달러(약 18억 원)의 로열티가 지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