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논에 많이 자라는 잡초들. 위에서부터 물옥잠, 너도방동사니, 마디꽃.

논은 밭보다는 잡초가 덜 나는 편이지만 김매기를 하지 않으면 거의 수확을 볼 수 없을 만큼 잡초로 가득하다. 그래서 예부터 벼농사는 잡초와의 싸움이라고까지 말한다. 벼가 자라는 동안에 피사리를 포함해서 네 번씩이나 김매기를 하는 어려움을 겪었으니 그럴 만도 한 일이다.
◆ 논 잡초는 무려 92종 = 우리 나라 논에 나는 잡초는 무려 92종. 이 중 여러해살이 잡초가 한해살이보다 두 배로 많다. 논 1㎡당 땅 속 16㎝ 깊이까지 무려 15만~16만 개의 잡초 종자가 떨어져 있으며, 그 중 싹이 터서 풀로 자라는 수는 불과 0.8%에 지나지 않는다. 묻혀있는 잡초 종자의 거의 절반 정도는 언제나 싹이 틀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에 김약을 뿌리거나 김을 매주지 않으면 언제나 풀로 우거질 수 있다.
◆ 피·마디꽃·물달개비 등이 많아 = 우리 나라 논에 많이 발생하는 잡초는 피·마디꽃·물달개비·올미·올챙이고랭이·가래·너도방동산이·올방개·벗풀 등이 있다. 이러한 잡초 무리도 논의 위치나 지형, 농사 짓는 방법, 김매기 방법 등에 따라 크게 다르다. 김약을 별로 쓰지 않았던 1970년대 초에는 마디꽃·쇠털골·물달개비·피 등 한해살이 잡초들이 많이 났는데, 김약을 많이 쓴 이후로는 한해살이 잡초가 많이 줄어든 대신에 여러해살이 잡초가 크게 늘어났다. 논을 가을에 미리 갈아엎어 놓으면 봄에 논갈이를 하는 것보다 잡초가 덜 난다고 한다. 또한 가을에 일찍 채소를 심거나 겨울 동안에 거름 작물이나 밀·보리를 심으면 잡초의 기승이 덜하다.
◆ 잡초는 벼가 먹을 양분을 빼앗아간다 = 잡초는 벼가 먹을 양분을 빼앗아 먹기 때문에 피해를 입는다. 벼가 어릴 때 잡초가 먼저 나서 무성해지면 햇빛을 가려서 벼가 광합성을 하는 것을 방해하게 되며, 또한 양분을 빼앗아 먹으니까 벼가 잘 자라지 못하게 되고 포기벌기도 제대로 못하게 된다.
◆ 가장 큰 피해는 피이다 = 벼에게 피해를 가장 많이 주는 것은 피이다. 피는 벼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벼보다 훨씬 뿌리가 굵고 왕성하게 뻗어서 양분을 강하게 흡수하기 때문에 피 근처에 있는 벼는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 벼를 밭 상태로 직접 종자를 뿌리거나 밭벼로 재배할 경우에는 잡초와 양분 싸움을 할 뿐만 아니라 수분도 빼앗기게 된다.
◆ 모내기 후 빨리 잡초 제거해야 = 벼를 직파(볍씨를 직접 논에 뿌리는 것)하거나 모내기를 한 뒤에 되도록 빨리 잡초가 싹튼 지 얼마 안 되는 이른 시기에 김약을 뿌리거나 김을 매주어야 피해가 적다. 김을 매주는 시기가 늦으면 늦을수록 풀이 많이 나고 벼의 소출이 크게 떨어진다. 따라서 모를 낸 다음에 한 주 안으로 한해살이 잡초를 주로 없애는 김약을 주고 다시 2~3주 뒤에 여러해살이 잡초를 없애는 김약을 주는 것이 가장 좋다. 요즈음은 한해살이와 여러해살이를 함께 죽이는 섞은 김약이 나와 있어서 모낸 보름 뒤에 한 번만 줘도 된다.
◆ 자운영·헤어리베치가 잡초 발생 막아 = 잡초 발생을 효과적으로 막으려면 종합적인 수단을 써야 한다. 우선 가을에 미리 논을 갈아엎어 놓든지 자운영이나 헤어리베치와 같은 거름 작물을 심는 것이 좋다. 이 거름 작물은 잡초가 덜 나게 할 뿐만 아니라 모를 심기 얼마 전에 갈아엎어 놓으면 쉽게 썩어서 거름이 되기 때문에 나중에 비료를 주지 않아도 된다. 두엄이나 볍씨와 함께 잡초 씨가 섞여 들어오는 것을 미리 막아야 하며 모내는 시기를 너무 빨리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모내기를 너무 빨리하면 벼가 어릴 때 잡초와 싸울 빌미를 많이 만들어주게 되고 늦게 심는 것보다 더 오랫동안 잡초와 씨름하여야 한다.
◆ 오리나 왕우렁이가 잡초 먹어치운다 = 김약을 주지 않고 잡초를 없애는 방법으로 논에 벼를 심어놓고 오리나 왕우렁이를 풀어서 농사를 짓기도 한다. 오리나 왕우렁이가 풀을 뜯어먹기 때문에 이를 이용하여 잡초를 없애려는 것이다. 또한 쌀겨를 논에 뿌려서 잡초를 덜 나게 하는 방법을 쓰기도 하고 모를 기계로 심거나 직파를 할 때 재생지를 논바닥에 까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 최해춘(농촌진흥청 작물과학원·농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