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풍당당 행진곡’으로 유명한 작곡가 에드워드 엘가(1857~1934년)는 영국 시골 브로드히스 사람입니다. 작은 악기점을 경영하던 아버지는 성당의 오르가니스트 겸 조율사였으며 음악 개인교습도 하는 등 만능 음악가였습니다. 아버지에게 음악의 기초를 배운 어린 엘가는 혼자 연습하는 걸 좋아해 여러 가지 악기를 터득했고요, 아버지 가게에 있는 악보나 음악 이론서를 닥치는 대로 읽어나갔어요.

15세 때 학교를 졸업한 엘가는 바흐의 고향인 독일 라이프치히로 가서 음악을 공부하려고 했지만, 집안 형편이 뒷받침되질 않았어요. 그래서 아버지의 가게를 도우면서 독학을 했고, 고향마을에서 실내악단 단원으로 연주 활동을 한답니다.

20세 때 엘가는 꿈을 펼쳐보입니다. 드디어 영국의 수도 런던으로 유학을 떠난 거죠. 하지만 유학 생활은 쉽지 않았어요. 자신이 생각했던 것만큼 바이올린 기량을 끌어올리지 못한 거예. 결국 비르투오소(명연주자)가 되는 꿈은 깨어졌고, 엘가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바이올린을 연주하면서 작곡에 힘씁니다.

엘가는 1889년 32세 때 퇴역한 육군 장군의 딸 캐롤라인 앨리스 로버츠와 결혼합니다. 엘가보다 8세나 많은 부인 캐롤라인은 남편의 재능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성공할 수 있도록 묵묵히 도와주었죠. 그 덕분일까요? 바이올린 교사로 살고 있었던 엘가는 지역 합창제를 위한 작품을 위촉받게 되었고, 이어 42세이던 1899년에 런던에서 ‘수수께끼 변주곡’을 초연할 정도로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었어요. 25년이나 되는 시간을 무명 음악가로 생활하다 마흔 살이 넘어 성공을 거두게 된 것이지요.

그 이후로 엘가는 승승장구, 기사 작위를 받고 영광의 시간을 누리게 됩니다. 하지만 63세 때 사랑하는 부인 캐롤라인을 잃고 엘가의 생활은 무척 고독해졌습니다. 이후 14년간에 걸친 만년의 시간 동안 엘가는 두드러진 작품을 남기지 못합니다. 그만큼 부인을 사랑했던 겁니다.

오늘 만나볼 곡은 엘가의 작품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 ‘사랑의 인사’(Salut d'amour)입니다. 사랑의 인사는 아침의 노래(Chanson de Matin), 저녁의 노래(Chanson de Nuit)와 함께 프랑스어 제목으로 지어진 곡으로, 프랑스 살롱 음악 풍의 가벼우면서 화사하고 온화한 느낌입니다.

특히 엘가는 이 ‘사랑의 인사’를 부인 캐롤라인에게 바쳤습니다. 자신이 어렵고 유명하지 않을 때 지극 정성으로 돌봐준 부인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은 것이지요. 이 아름다운 곡은 원래 피아노곡이 원곡입니다만, 바이올린과 피아노, 첼로, 비올라, 가사를 붙인 합창곡 등 다양한 편곡으로 만들어져 연주자들이 앙코르곡으로 자주 연주하는 곡이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오케스트라 편곡으로도 만들어져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 다양한 오케스트라가 이 곡을 연주하고 있죠. 귀엽고 사랑스러우며 정직하고 순수한 사랑의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장일범의 추천 음반>

따뜻한 음색의 바이올리니스트 길 샤함의 연주가 무척 둥글고 사랑스럽습니다. 프리츠 크라이슬러의 다양한 바이올린 소품들과 함께 들을 수 있는 이 앨범에서 샤함은 다정한 바이올린 음색으로 우리의 마음을 포옹해 주고 있습니다.

한국어 가사로 노래한 합창곡으로도 들을 수 있습니다. 서울모테트합창단이 실황으로 노래한 엘가의 ‘사랑의 인사’는 ‘음악은 나의 영혼을 달래네~’라는 가사로 시작하며,  조화로운 화음이 매우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