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동차 기술 혁신①
- 세계 최초의 군용차 '지프'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가 전쟁의 승리를 자신한 이유 중의 하나가 독일의 발전한 기계공업이었다.
그러나 기계과학의 대국인 독일군도 2차 대전 초기에는 기동 장비가 그다지 자동화되어 있지 못했다. 단지 나치군의 고위 간부만이 군용으로 개조한 벤츠 승용차를 이용하거나 히틀러가 자신만만하게 개발해 900여 대를 생산한 국민차 폴크스바겐이 전쟁 초기 독일군 군용차의 전부였다.
전쟁 중 독일군은 폴크스바겐을 야전 지휘용 군용차로 사용하기 위해 포르셰에 도로 외의 모든 지형에서 운행할 수 있는 군용차로 개조할 것을 지시했다. 그리하여 뒷바퀴 굴림의 폴크스바겐을 사륜구동으로 개조해 야전용으로 사용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독일형 4륜 자동차의 시초다. 딱정벌레같이 생긴 차체는 그대로 두고 구동장치만 4륜으로 바꾼 뒤 야전용 타이어를 끼워 전장으로 내보낸 것이다.
전장에 투입된 폴크스바겐은 공랭식 엔진을 얹어 추운 러시아나 물이 귀한 아프리카 사막에서도 고장을 일으키지 않아 군용으로 안성맞춤이었다. 독일군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페르난드 포르셰 박사에게 보다 뛰어난 소형 군용차 개발을 지시했다. 그리하여 1939년 말 상자형 차체를 얹은 4인승 ‘퀴벨바겐’ 시작차가 개발되어 군에 납품됐다.
그러나 힘없고 볼품없이 생긴 데다 차 뒤쪽에 얹혀진 공랭식 엔진의 진가를 알지 못한 군은 그 자리에서 퇴짜를 놓았다. 이때 ‘사막의 여우’라는 별명을 가진 명장 에르빈 롬멜 장군이 퀴벨바겐을 보고 즉석에서 시운전해본 후 사막에서 이보다 이상적인 소형 기동장비는 없다고 판단해 이집트 침공을 위해 1000대를 만들어주면 히틀러의 허락을 얻어주겠다고 약속한다.
포르셰 박사는 우선 롬멜의 주문을 충당하기 전에 시험 삼아 러시아 전선으로 100대를 투입해 테스트했다. 이곳에서 퀴벨바겐은 그 진가를 발휘했고 1940년 봄부터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갔다. 초기에는 983cc 공랭식 엔진을 얹었으나 1942년부터는 1130cc 엔진을 얹었다. 퀴벨바겐은 경사를 오르는 등판력이 강한 저속 기어를 사용해 가파른 언덕길도 거뜬하게 올랐다.
보병의 전투용 소형 군용차를 확보하자 독일군 각료들은 1943년 퀴벨바겐보다 승차감이 우수한 지휘용 차를 원했다. 이에 포르셰는 생산을 중단한 폴크스바겐 비틀 사륜구동을 다듬어 ‘코만도바겐’이라는 이름을 붙인 야전 지휘용 차를 만들었다.
/전영선 소장(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