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메이저 첫 우승을 차지한 이미림(30)은 다음 날인 15일 포틀랜드에 도착해 전화를 받았다. 17일 개막하는 포틀랜드 클래식을 준비 중이었다. “여전히 실감이 안 난다”고 했다.

LPGA 투어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14일 우승을 차지한 이미림이 트로피를 들고 있다./AFP 연합뉴스

“코로나 때문에 우승 관련 행사도 못했어요. 동료들한테 한턱 낼 수도 없고요. 부모님이랑 통화하면 실감 날까 했는데, 우리 가족은 ‘미림이 우는 거 봐라’ 하면서 깔깔 웃더라고요.”

그는 칩샷을 홀에 3번이나 넣어 놀라운 우승을 차지했다. 계획대로 착착 맞아떨어진 건 아니었다. “18번 홀 이글이 된 칩샷은 얇게 맞아 목표보다 먼 지점에 떨어졌고, 중간에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 깜짝 놀랐어요.” 기자회견에서 그는 “오늘 잘됐을 뿐 칩샷이 내 강점은 아니다”라고 했다. “원래 아이언샷을 잘 쳐서 그린 주변 칩샷 할 일이 거의 없었어요. 하지만 3년 전부터 샷이 흔들려 어프로치샷 기회가 너무 많아졌죠. 최근에 집중 훈련했어요.”

예전에 하지 않던 큰 실수가 자주 나오면서 슬럼프가 시작됐다. 2014년 미국 진출 이후 투어 생활에 지쳤다고 했다. 올해 코로나 때문에 국내에 머물며 열심히 훈련했는데도 6월 한국여자오픈에서 컷 탈락하자 정신적으로 무너졌다. 그때 아버지가 “집 가까운 골프장에 송희가 있다는데 가볼래?”라고 했다.

이미림은 2013년까지 LPGA 투어에서 활약한 김송희(32) 코치와 중학교 때부터 알고 지냈다. 숱하게 준우승을 했지만 우승 문턱을 넘지 못한 김 코치는 은퇴 후 지도자로 활동해왔다. “언니랑 대화를 많이 하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예전엔 경기가 안 풀리면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이것저것 시도했죠. 이젠 어떻게 행동해야 하고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아요.”

그는 ‘원하는 샷을 제대로 해내는 것’만을 목표로 삼았다. 그랬더니 등수에 대한 집착이 사라졌다고 한다. 이번 대회 연장전을 앞두고도 김 코치와 통화했다. “스윙에 대해 물어봤는데 언니는 ‘하고 싶은 거 다 해’라고만 했어요. 언니가 스윙 얘기를 하지 않아 복잡한 생각 없이 집중할 수 있었어요. 힘든 시절 겪어본 언니가 선수 마음을 잘 알아요.”

현역 시절 김송희 코치/JNA

대회 전통에 따라 연못에 뛰어드는 세리머니를 했다. 캐디는 팔다리 쭉 뻗고 온몸으로 입수한 반면 이미림은 깡충 점프했다. “물이 꽤 깊어 무서웠어요.” 사실 이번 대회에서 처음 만난 캐디였다고 한다. 작년부터 함께해온 캐디는 코로나 때문에 비자 발급이 중단돼 뉴질랜드에서 나오지 못했다.

“힘든 골프를 얼마나 오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선수 생활 빨리 접었던 송희 언니는 ‘오래 쳤으면 좋겠다. 길게 생각하자’고 해요.” 만족을 모르는 이 완벽주의자는 “메이저 우승은 했지만 마지막 날 경기는 마음에 안 들어요. 더 채워나가야 해요”라고 했다.

ANA 인스퍼레이션 대회 전통에 따라 포피스 폰드에 뛰어드는 우승자 이미림. 살짝 점프했다./AFP 연합뉴스
이미림의 캐디 맷 글치스가 연못에 온몸을 던지는 모습. 이번 대회에서 처음 호흡을 맞췄다./AFP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