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LG-한화전에서 끝내기 몸에 맞는 공으로 결승 타점을 기록한 정진호(왼쪽)가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 송정헌 스포츠조선 기자


15일 한화와 LG의 시즌 14차전. 5-5로 팽팽히 맞선 연장 10회말 2사 만루 상황에서 한화 정진호가 타석에 들어섰다. 마운드엔 LG 마무리 고우석이 있었다.

정진호는 이날 7회말 대타로 들어와 안타를 때리며 ‘빅 이닝’을 만드는 단초 역할을 했다. 한화는 1-5로 뒤지던 7회말 대거 4점을 뽑아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다시 10회말 만루 상황. 정진호는 올 시즌 만루 찬스에서 8타수 무안타로 아주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한화와 LG 팬들이 모두 조마조마하며 경기를 지켜보던 순간 뜻밖의 장면이 연출됐다. 고우석의 직구가 정진호의 옆구리를 강타한 것이다. 한화가 정진호의 끝내기 사구(死球)로 6대5 승리를 거두며 4연패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순간이었다. 한화는 올 시즌 천신만고 끝에 30승(75패)을 달성했다.

올 시즌 안경에 콧수염까지 길러 다소 코믹한 인상을 주는 정진호의 표정이 압권이었다. 시속 153km짜리 직구를 그대로 맞아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었겠지만 승리의 기쁨이 더 큰 모양인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최원호 감독대행을 비롯한 한화 팀원들도 환호하기 바빠서 공에 맞은 정진호를 걱정해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번 시즌 만루 상황에서 첫 타점을 기록한 정진호는 민망한 듯 천천히 걸어가다가 1루를 눈앞에 두고 뛰었다. 몇몇 동료들이 그의 뒤를 따라 달리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정진호는 경기 후 수훈 선수 인터뷰에서 “나까지 찬스가 올 것 같아 어떻게 쳐야 할까 생각하며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왔다. 이겨서 기분 좋다”며 “끝내기 안타와 홈런을 다 쳐봤는데 끝내기 데드볼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끝내기 데드볼은 처음이었겠지만 정진호는 각종 진기록을 가진 선수로 유명하다. 유신고·중앙대를 나와 2011년 두산에 입단한 그는 커리어 대부분을 백업 선수로 뛰었다. 하지만 몇몇 임팩트 있는 장면으로 팬들의 기억에 남아있다.

정진호는 역대 최소 이닝, 최소 타석 사이클링 히트의 주인공이다. 두산 시절인 2017년 6월 삼성전에서 1회 2루타, 2회 3루타, 4회 단타, 5회 홈런을 치며 4.2이닝, 4타석 만에 사이클링 히트를 완성했다.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도 두 번이나 쳤다. 두산 유니폼을 입고 2018년 5월 KT전과 작년 6월 삼성전에서 담장을 넘기지 않고 홈을 밟는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을 한 차례씩 기록했다. 사이클링 히트와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을 동시에 기록한 선수는 KBO리그에 역대 8명밖에 되지 않는다.

정진호는 엉뚱한 매력으로 두산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2015년 정규리그 최종전이 끝나고 선수단이 단상에 올라 인사를 할 때 정진호는 “노래나 한 곡 부르겠다”며 자신의 응원가를 율동에 맞춰 불러 팬들을 즐겁게 했다. 정진호가 나오면 상대가 갑자기 실수를 하는 등 마법 같은 장면이 일어날 때가 있어 ‘정진호그와트(정진호+호그와트)’란 별명도 붙었다.

한화 이글스 홈페이지 선수 소개란의 정진호. 행운을 부르는 얼굴이다.


2019시즌이 끝나고 2차 드래프트를 통해 한화 유니폼을 입은 정진호는 올 시즌 초반 또 한 번 화제의 장면에 등장했다. 5월 롯데전에서 연장 11회말 2사 3루에서 정진호를 상대한 롯데 투수 김대우가 보크를 저지른 것이다. 정진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상대의 끝내기 보크로 3루 주자가 홈으로 들어오며 한화가 5대4로 이겼다. 한화 팬들은 “두산 시절 정진호의 ‘법력’이 한화에서도 이어졌다”며 기뻐했다.

정진호는 올 시즌 한화에서 쏠쏠한 역할을 해주고 있다. 좌익수와 우익수, 중견수를 가리지 않고 나오며 외야를 지키고 있고, 1번부터 9번까지 다양한 타순에 배치돼 200타석 이상 소화한 타자 중 팀 내 타율 1위(0.289)를 달린다.

정진호는 “팀 성적이 좋지 않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그래도 선수들과 코칭스태프가 하나가 되어 이기려고 하고 있다. 악착같이 하는 모습을 팬들에게 보여 드리려고 노력하겠다”고 말했다.